36승 뒤 뼈아픈 1패 "빚 갚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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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유명우>
「작은 표범」유명우(28·대원체)가 다시 일어섰다.
지난 7월2일부터 독기 어린 한을 품고 재기의 발톱을 갈아온 유명우가 마침내 오는18일 한 맺힌 첫 패배의 장소 일본 오사카 부립체육관에서 일본의 이오카 히로키(23)와 재 대결한다. 목표는 오직 단하나 자신의 복싱인생에 첫 패배를 안겨줬던 이오카를 캔버스에 누이기 위해서다.
승리의 대가로 얻게될 WBA주니어 플라이급의 타이틀은 차라리 부수적인 전리품에 불과할 뿐이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다시 링에 오른다. 6년 동안 지켜왔던 타이틀벨트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지난해엔 이오카가 나의 37연승을 막았지만 올해엔 내가 그의 최근 10연승 행진에 종지부를 찍어 주겠다.』
사려 깊은 성격으로 좀처럼 큰 소리를 치지 않는 유명우지만 승리를 다짐하는 목소리엔 최후의 결전에 나서는 장수처럼 사뭇 비장함마저 실려있다.
유명우는 지난해 12월, 18차 방어에 실패한 뒤 올해 7월 다시 글러브를 끼기까지의 7개월간을「제2의 가출」이었다고 스스로 규정지을 만큼 큰 고뇌와 번민에 시달렸다.
고교 졸업 후 한때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자신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시험해보던 때가 육체적인 첫 번째 가출이었다면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은퇴와 재기의 갈림길에서 번민했던 지난 반년은 정신적인 두 번째 가출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유에게는 지나온 36번의 승리보다도 단 한번의 패배가 더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때 60㎏까지 웃돌던 체중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관악산 로드웍(약 12㎞코스)과 1백20여 라운드의 스파링으로 주니어플라이급의 한계체중(48.98㎏)에 거의 육박하는 51㎏으로 끌어내렸다.
주위에선 그 동안 단 한차례도 실전경기를 치르지 않아 링 감각회복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 재기시기가 늦지 않았느냐, 이번엔 도전자의 입장인데다 대전장소 역시 일본으로 판정에서도 극히 불리할 것이라는 등 우려가 높지만 유는 화끈한 타격 전으로 KO승을 이끌어내겠다는 각오다.
『당시엔 오랜 기간의 타이틀 방어로 정신력이 해이해졌는데다 계체량에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해 어려운 경기를 해야만했다. 특히 이오카의 스트레이트가 홈 링의 이점을 안고 득점에 크게 작용, 판정에 졌지만 이번엔 초반부터 난타전을 전개해 KO로 승패를 가르고야 말겠다』
유명우는 이오카가 발놀림이 빠르고 왼손 잽에 이은 스트레이트 연타에 능하지만 체력이 약한데다 경기운영이 단순, 초반부터 접근 전으로 기회를 만들어내 KO를 노리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특히 한국복싱은 최근 3년간 일본원정 세계타이틀매치에서 6연패의 수모를 겪고있어 이번 경기결과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는 10년 전 입관료 3천원을 모아 처음 복싱도장 문을 두드렸던 때의 스승 김진길 대원체육관관장과 함께 12일 도일, 명예회복에 나선다.
지난해의 판정패가 석연치 않았음을 WBA가 인정, 아직까지 주니어플라이급 1위에 올라있는 유는 36승(14KO)1패로 7만 달러(약5천6백만원)의 대전료를 받으며 이오카는 21승(9KO) 2패1무에 12만 달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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