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처럼 운영(33일간 잠입취재기/「불발로 끝난 휴거」: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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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험」에 합격해야 올라간다”/“믿음·예배정성 하느님이 채점”/성경·교리학습없이 설교만/강요없이 자발적 헌금 유도
지난달 26일밤,각 예배실에 설치된 TV화면을 통해 이장림목사의 설교테이프가 방영되고 있었다. 『휴거는 대학입시와 똑 같습니다. 다미식구들은 휴거라는 대학입시를 보는 수험생입니다. 휴거시험방식도 대입고시와 비슷해 내신성적(평소 믿음이나 전도)와 당일시험(매일 예배 정성)이 각각 50%씩 반영되고 커트라인만 넘어서면 선발되는 절대평가지요. 하느님은 지금 이순간에도 채점하고 계십니다. 열심히 공부합시다. 아멘­.』
열광하는 신도들,아니 휴거수험생들.
『합격하게 하소서. 할렐루야.』
『제발,오늘 성적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주여,저는 6백일 가까이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한달 내내 예배시간엔 「휴거,합격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의 테이프가 방영됐다.
보통 교회와 달리 이곳엔 별도의 성경공부·교리학습 시간이 없고 신도와 목사·전도사간에 대화도 거의 없다. 오직 개별적으로 나와 「휴거강의」를 듣고 전도활동하는게 신앙생활의 전부. 한 신도의 말처럼 「교회가 아닌 입시학원」식으로 운영됐다.
열성신도와 간부들에겐 「다미배지」가 나온다. 타원형에 새끼손톱크기의 배지에는 MCD(Mission for the Comming Days: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라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휴거예정일 10여일을 앞두고 기자는 다미배지를 단 신도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큰소리로 외치며 전도활동을 벌였다. 전도무기는 「미래에 대한 공포」.
『형제자매들 할렐루야­,얼마전 일간지에서 구멍뚫린 오존층을 보셨을 겁니다. 종말의 증거예요.』
『유럽 10개국이 올해안에 통합된다는 얘기 들으셨죠. 이 통합 의장이 바로 악마인 적그리스도입니다.(성경을 펴 보이며) 자,여기 나와 있잖아요.』
『여러분­. 이번이 마지막 기회로 놓치면 7년동안 전쟁·기근·피섞인 우박·독충에 시달릴 겁니다.』
상당수 시민들이 겉으론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을 하면서도 「혹시나」하며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공식적인 헌금은 서울의 본부교회에서만 매월 8천만∼1억여원 정도. 월단위로 집계해 발표한다.
그러나 규모가 큰 특별헌금은 별도로 이뤄지는듯 했다. 한달내내 한번도 헌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예배당 입구에 헌금함이 놓여있지만 핀잔주는 사람은 없다.
『이곳에선 다른 교회와 달리 헌금에 대한 부담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그뿐입니까. 설교테이프·찬송가집 등 모든게 공짜고. 가난한 신도들의 낙원이지요.』
남편없이 단칸방에서 어린 딸과 함께 산다는 이숙희씨(가명)의 다미예찬.
『모든 인연을 청산하세요. 필요하면 부모·형제자매와의 혈연까지도. 채무관계도 마찬가지….』
「인연·욕심은 휴거에 방해된다」는 교리에 따라 휴거를 앞두고 재산을 처분하는 신도가 많았고 이중 상당액수가 자발적으로 교회로 유입되는 듯했다. 28일 저녁,휴거를 앞두고 헌금함을 치워버렸는데도 누추한 차림의 40대 여신도는 만원권 50장정도가 든 봉투를 한 집사에게 건네주는 모습.
휴거불발 직후 가슴에 달고 있던 이른바 「휴거신분증」을 찢어버리던 30대 열성신도의 울먹임.
『착한 일을 하면 「휴거합격」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전세금 1천5백만원을 빼,빚갚고 불우이웃돕는데 1천1백만원을 쓰고 나머지는 헌금했는데…. 이제 어떡해요,거리에 나앉게 됐으니….』<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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