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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명성「핑」골프채 무명골퍼 "아이디어"|42세 때 입문 솔하임(제조사 사장) 쉬운 퍼팅 위해 제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8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골프채「핑」이 탄생한 것은 무명의 한 아마추어 골퍼의 집념으로 이룩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있다.
웬만한 골퍼들이면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스코어를 2∼3타 정도 쉽게 줄일 수 있어 세계 아이언 골프채 시장의 3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핑」골프채의 고안자는 제조사인 카르스텐사의 사장 카르스텐 솔하임(81).
엔지니어 출신인 솔하임이 골프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그의 나이 42세 때.
노르웨이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두살 때인 1913년 미국으로 이민 온 솔하임은 2차 대전 중 샌디에이고의 선박회사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시작, 제너럴일렉트릭사에서 근무하다 67년에 사직했다.
이젠 골프로 백만장자가 됐지만 그가 회사 동료의 초청으로 뉴욕에서 첫 라운딩을 시작한 것은 53년이며 당연히 플레이 내용은 엉망진창이었다. 다른 골퍼들처럼 솔하임도 골프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큰 진전이 없었고, 특히 퍼팅에 애를 먹었다.
솔하임은 볼이 휘지 않으면서도 손쉽게 퍼팅할 수 있는 퍼터를 제작키로 결심, 기존 퍼터의 헤드 앞·뒤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 새로운 퍼터를 만들어 냈다. 이 퍼터는 6년여 동안 솔하임과 그의 몇몇 친구들만이 사용했으며 퍼팅하는 순간「핑」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핑」퍼터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런 후 59년 한 골프 숍에서 이 퍼터의 제조판매를 솔하임에게 제의, 생산에 들어가 비로소 시판되기 시작했다. 60년대 초 여자프로인 글로리아 암스트롱이 이 퍼터를 사용, 우승함으로써 골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56세 때인 67년 근무하던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근무처를 피닉스에서 오클라호마로 전출하려고 하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솔하임은 조그마한 건물을 하나 구입, 본격적인 퍼터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퍼터 개량에 전력을 기울이던 솔하임은 아이언 세트의 개발에 나서 82년「핑 아이 2」라는 새로운 아이언 골프채를 선보였다.
퍼터와 마찬가지로 핑 아이 2 아이언도 처음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87년 무명에 가까운 마크 칼카베치아가 혼다 클래식대회에서 TV 중계되는 가운데 핑 아이2를 사용, 멋진 러 프 샷을 성공시키자 갑자기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핑 아이2 골프채가 갑자기 골퍼들의 관심을 끌게된 것은 퍼터와 마찬가지로 헤드의 앞·뒤 부분에 무게를 더 실어주고 가격점 뒷면 중앙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클럽의 중심 이동을 쉽게 함으로써 스윙이 다른 골프채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핑 아이2가 인기를 끌자 다른 업체에서도 이를 모방한 아이언을 제조했으나 핑 시장점유율을 잠식하지 못했다. 핑 아이2는 클럽헤드 앞면에 다른 클럽들이 V자 홈을 파놓은 대신 U자 홈을 사용, 볼에 더 많은 스핀(역회전)을 줄 수 있어 쉽게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핑 아이2는 다른 아이언 세트보다 30%이상이나 비싼 5백50달러(43만원)에 미국에서만 1백만 세트 이상 팔려 순식간에 솔하임을 거부로 만들었다. 그의 회사도 연간 8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자산가치는 2억 달러(포브스지 평가 4억5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핑 아이2는 87년 세계골프의 양대 산맥인 미국골프협회(USGA)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골프클럽으로부터 「골퍼들에게 불공정한 이점을 준다」는 이유로 사용금지 조치를 당해 법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솔하임은 올해 초 핑 아이2보다 훨씬 정교한 「핑징」아이언세트를 선보였는데 아이언 샤프트의 경우 6백80달러, 그래파이트·티타눔샤프트의 경우 1천3백60달러(이상 도매)에 시판되고 있다. <임병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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