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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10大 물결 ②] 생활혁명 이끌 ‘창조의 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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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모든 신기술은 나노에서-.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현대 과학자는 많지 않다. 그만큼 나노 과학이 미치는 파괴력은 크다. 바이오·에너지·환경 등 흔히 미래를 이끌 신산업으로 일컬어지는 기술들은 나노와 접목되면서 비상(飛上)을 시작한다.

▶LG필립스 LCD가 내놓은 14인치 컬러 전자종이.

그래서 과학자들이 21세기의 나노기술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나노기술을 가리켜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라고 부른 미국의 에릭 드렉슬러는 “나노테크놀로지는 일상 생활에서 식량·노화 문제까지 인류의 모든 생활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견했다.

이제 나노기술의 뒷받침 없이 다른 신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나노는 모든 산업의 밑바탕이 되는 기반기술이기 때문이다. 기반기술, 원천기술 부재의 서러움을 겪어 왔던 한국으로서는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나노다.

향후 10년 이내에 나노기술이 적용된 제품과 산업 규모는 급격히 성장할 것이다. 세계적인 나노기술 조사분석 기관인 룩스리서치는 2004년 130억 달러였던 나노산업 규모는 2014년 2조6000억 달러로 20배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희망을 갖고 베팅해 볼 시장인가? 일단 기술 수준으로만 보면 낙관적이다. 룩스리서치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나노기술을 보유했다고 밝혔다.

세계 4강이면 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격차가 문제다. 상위 3개국의 나노기술은 수준차가 크지 않고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 상위 그룹에서 뚝 떨어져 나온 4위다. 이게 문제인 것이다.

Special POINT

왜 나노산업인가?

■ IT·BT·ET 등 모든 첨단산업의 기반 기술
■ 2014년 나노기술 산업 규모 2조6000억 달러
■ 한국 기술 수준 세계 4위권 해볼 만
■ 빅3 국가와 기술 격차 있지만 점차 좁혀져
■ 나노 활용 분야 무한대…고령화 진행될수록 ‘빛’

하지만 희망이 있다. 격차가 줄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04년을 기준으로 한국이 미국의 62% 수준까지 기술이 향상됐다고 보고 있다. 여전히 차이가 크지만 격차를 좁혀 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2001년에는 우리 나노기술은 미국의 25% 수준이었다. 자신감을 갖게 된 정부는 2015년까지 우리나라를 ‘나노 탑3’에 올려놓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나노산업은 미래 첨단 산업과 병행해 성장해 갈 것이다. 이미 개봉을 앞둔 기술 시나리오가 속속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나노기술은 초정밀 기계 조작을 통해 수㎜의 초소형 로봇을 만들 수 있다. 이 로봇은 의료용으로 쓸 수 있다. 자체 에너지를 갖고 우리 몸속 혈관을 타고 다니며 몸속에서 질병을 치료한다.

또 모공이나 땀샘 직경보다 작은 나노캡슐도 만들 수 있다. 이 캡슐에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한 의약품을 탑재하면 마치 스커드 미사일처럼 아픈 부위를 세포 하나 단위로 정밀하게 공격할 수 있다. 나노학자들은 이 기술에 ‘마법탄환(Magic Bullet)’이나 ‘지능탄(Smart Bomb)’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어 수영복’도 나노기술로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이미 나노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나노기술을 이용한 제품도 이미 적지 않다. 나노 현미경으로 상어의 표면을 관찰한 뒤, 나노기술로 이와 똑같이 수영복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신기록의 기대를 품게 했다.

비가 오면 풀잎 먼지가 저절로 닦인다. 나노기술로 이 표면 역시 똑같이 재연해 유리창을 만들 수 있다. 셀프 클리닝 효과를 발휘해 유리창 먼지를 닦을 필요가 없다. 나노 수준에서 유해 물질을 분해하는 항균·탈취제도 나와 있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메모리 분야의 발전도 눈부시다. 현재 50나노공정의 16기가비트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양산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를 이용해 만든 32GB 메모리카드에는 신문 200년 분량, DVD 20편, MP3 8000곡이 저장된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정보는 힘이다. 이 ‘힘’을 나노기술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 현재 통신기술은 신문 27년치 분량의 데이터를 단 1초에 전송할 수 있다.

▶(좌) 상어 지느러미 돌기를 이용해 만든 수영복.
(우) 상어 지느러미를 확대한 사진.

나노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의 삶은 더 놀랍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우선 나노 반도체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전 세계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모든 지식을 휴대전화를 통해 전송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세계 도서관이 보유하는 지식의 양을 저장한 대용량 메모리를 몸에 지니고 다닐 수도 있다.

데스크톱에서 노트북으로 발전한 컴퓨터는 현재 몸에 걸치는 웨어러블 PC로 발전해 가고 있다. 좀 더 발전하면 메모리 칩은 인간의 몸에 직접 이식되거나 내장되는 형태로 전환될 것이다.

현재 손목시계형 컴퓨터가 시장에 나올 채비를 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각각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전자주민카드, 종이와 같은 형태의 두루마리형 모니터, 보조기억장치 역할을 하는 칩의 두뇌 이식이 가능한 날이 곧 올 것이다.

종이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도 나노기술에 달려 있다. 나노 크기의 작고 가벼운 잉크 입자를 이용한 전자종이(e-paper)는 종이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종이처럼 만든 정보표시장치이다.

아직 종이처럼 접거나 구길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종이 두께의 화면이나 동영상 구현이 가능한, 초기 단계의 전자종이는 이미 개발됐다. 미래에는 전자종이에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한 무선 송신이 가능하고 동영상 화면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전자신문이 등장할 것이다.

‘우주 엘리베이터’도 가능

지금 우리의 휴대전화에 달려 있는 조그만 카메라는 지금부터 10년 전이었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신기한 것이었다. 최근의 초고해상도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는 어떠한가? 초대형 프로젝션 TV나 LCD TV 등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모든 첨단 음향, 영상, 오락, 정보가전 기기들의 재료와 부품 가공 및 생산에 나노기술이 내재돼 있다.

나노기술은 더 ‘꿈같은 현실’을 만들어 낼 힘이 있다. 유리창에 투명한 태양전지를 코팅해 에너지를 스스로 창출하는 창문을 생각해 보라. 나노 파우더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초경량 초박막 전지도 등장할 것이다. ‘꿈의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다.

‘탄소원자로 만든 나노 사이즈의 관’인 탄소나노튜브는 현존 물질 중 가장 강도가 크고 다양한 물리·화학적 성질을 갖고 있는 전자소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10년 안에 이 신소재로 엘리베이터를 구동시키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치 고층 빌딩을 올라가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로 오를 날이 올 것이다.

▶유리에 실리카 나노 입자를 섞음으로써 1000도에서 두 시간 이상 견딜 수 있다(왼쪽).
일본의 나노 과학자들이 원자로‘원자’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시장은? 무한대다. 한 가지 예만 들어 보자. 바이오 기술로 출시되는 신약의 부가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항암제 인터페론은 1g에 5000달러나 나간다. 무게로 따지면 금값의 360배다. 1g에 60만 달러나 하는 빈혈 치료제도 있다. 나노기술을 활용하면 이런 신약 만들기가 훨씬 쉬워진다. 나노 구조물은 생체분자인 단백질과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신약 개발은 훨씬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진 각국은 나노기술에 전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2000년 미국 정부는 나노기술 연구에 대한 미국의 총괄정책보고서를 내놓았다. “나노기술은 21세기에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학 기술 분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보고서는 “나노기술은 제조, 의약, 에너지, 통신, 컴퓨터, 그리고 교육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효과를 줄 것”이라고 썼다.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가장 획기적 효과가 기대되는 분야가 컴퓨터 소자이고, 가장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가 의학 분야다. 인체는 태생적으로 나노 수준의 분자로 구성돼 있어 분자에 대한 나노기술의 적용이 가능하다면 인간 질병의 조절에 극적인 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과학자 대부분은 이 보고서의 연구결과에 동의한다. 미래학자들은 나노기술이 단순한 기술적 측면에서만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미래사회를 이끌 수많은 기술의 기반기술이 될 것으로 본다. 미래의 핵심 기술은 유비쿼터스, 에너지 소비의 효율화, 환경오염물질 배출 감소 등과 관련된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서라도 나노 산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고령화 사회는 기본적으로 ‘건강’을 전제로 한다. 나노기술은 보건 및 의료 기술의 발전을 급속하게 촉진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도 나노기술은 필수다. 환경 친화적 에너지 공급, 즉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연료전지 개발, 태양광 전지 개발 등 공공 이슈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또 나노기술이 차세대의 기술교범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21세기에는 나노기술이 개입되지 않은 산업을 생각하기 어렵다. 나노기술은 재료과학·생명과학·정보과학을 융합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노기술은 과학 기술뿐 아니라 미래의 삶 전체를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이끌어

현대는 정보화와 가상현실 시대를 뜻하는 ‘디지털 세상(Being Digital)’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은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물질과 현실을 의미하는 ‘원자의 세계(Being Atomic)’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미래학자는 결국 나노기술이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본다. 각 선진국이 경쟁적으로 나노기술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은 선진국과의 격차가 적지 않지만 격차를 인정하고 포기하기에 나노산업이 주는 효과는 너무나 크다. 2001년 정부는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국가 차원의 나노기술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산업자원부는 나노기술의 산업화 측면을 중시해 ‘나노기술산업화센터’를 구축했고, 나노기술을 미래전략기술 개발을 위한 4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해 집중 지원할 방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뒤처진 나노기술은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김창경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 김태윤 기자 pin21@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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