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심의에 바란다/김동건 서울대교수(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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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복지·환경투자 지원 늘려야/국민의사 반영 장기비전 제시필요
국회의 국정감사가 끝남에 따라 국회는 이제 93년도 에산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다.
내년도 예산은 일반회계 기준으로 38조5백억원에 달하고 있고 이것은 전년대비 14.6% 증가한 규모다. 이 규모가 팽창인가 아닌가는 각자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우리 경제의 총체적 규모로 보아 이 정도는 별무리없는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예산을 편성하는 데 어려운 점은 경제안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해야 하면서도 한편으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생산기반시설 확충 등 필요한 분야에 재정이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하는 2중의 과제를 지니고 있는 점이다. 이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데는 현재의 재정운용 여건에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재정내부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중 우선적으로 개혁해야할 재정 경직성의 완화에 애쓴 흔적이 보인다. 예컨대 국방비의 증액을 한자리 숫자인 9.8%에 머무르게 한 것이라든가,소득보상장적 지출을 억제하고 그 대신 국가정책적으로 현안인 중소기업육성 및 농어촌 구조조정 등에 예산을 확대한 것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내년도 예산이 사회간접자본·과학기술분야에 평균치이상 지원을 증액시켰다고 하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미흡하며,선진사회의 이행에 필수적인 국민복지 및 환경관련분야에의 예산지원은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선을 앞두고 마련된 예산이기에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의 골이 깊은데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투자사업의 타당성이 과연 엄정하게 평가됐는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재정에 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선진국들과 냉혹한 경제전쟁을 치러야할 상황에서 재정이 해야할 과제가 선명히 부각되도록 정부의 장기적 비전이 예산속에 제시되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선 매우 미흡하다.
이번 예산심의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점들에 대하여 심도있는 토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불행하게도 과거의 국회 예산심의는 너무나 불성실하였다. 현실적으로 국회심의과정에서 정치적인 타협측면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납세자인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기몫 챙기는 일에 열중하고 경제논리보다 정치적 이해가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관행은 이제 개선되어야 한다.
예산심의 기간이 너무 짧다는데도 문제가 있다. 1백일간의 정기국회 회기중 예산심의에 사용된 기간은 상임위와 예결위를 모두 합쳐 평균 13일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실태다. 이 기간도 절반이상을 정책질의하는데 투입하고 있으니 부서별 심의는 자연히 형식적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가 예산을 수정하는데 내용면보다 외형적 규모를 얼마나 삭감할 것인가가 여야협상의 주대상이 되었고 심사의 핵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국회의원 스스로가 국정의 주책임자로서 예산심의에 성의를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산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예산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의원들에게 결여되어 있다면 이러한 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 국회에서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부문의 예산만이라도 선별하여 심층분석하고 검토하는 그런 모범과 선례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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