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회계층'이 중국 변화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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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그룹이 등장했다. 이른바 '신사회계층(新社會階層)'이다. 500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의 보유 자산은 10조 위안(약 1200조원)에 이른다. 세금 납부액은 중국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만큼 경제 활동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소득 수준으로 보면 대부분 중산층이지만 역할은 그 이상이다.

각종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법치와 제도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들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인다. 이들이 집단세력으로 변해 사회 각 부문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국가 권력에 도전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 천시칭(陳喜慶) 부부장은 최근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체제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중국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신사회계층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사회계층은 앞으로 사회 곳곳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1990년대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생겨난 중산층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한 그룹을 지칭한다. 그래서 신중산층으로 불리기도 한다.

통일전선부 분석에 따르면 신사회계층은 대부분 고학력.고소득자다. 주로 민영기업이나 전문직종에 근무하면서 통제보다는 자유 사상을 선호하며 안정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직업은 변호사, 회계사, 자영업, 중소기업 사장, 다국적 기업 종사자 등 다양하다. 상당수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고 창의적인 생활을 즐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루쉐이(陸學藝) 박사 분석에 따르면 2002년 신사회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2000만 명 정도였으나 5년 만에 2.5배로 늘었다. 여기에 이들과 관련된 업종의 종사자를 합칠 경우 잠재적 숫자는 1억5000만 명으로 늘어난다. 전체 중국 인구의 10%가 넘는다는 얘기다.

루 박사는 "공산당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이들을 정부와 공공기관으로 끌어들여 선진사회 건설의 주역으로 활용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사회 변화 주도=올 3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를 통과한 물권법은 신사회계층의 합작품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유재산을 인정해야 시장경제가 발전한다는 게 이들의 한결 같은 논리였기 때문이다.

중국민영경제연구회의 바오위쥔(保育鈞) 회장은 "물권법이 통과되고 자본가 계급의 공산당 입당이 허용된 데는 정치협상회의(政協)에서 활동하는 신사회계층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첨단 민영기업은 20만 개로, 전체 기업의 0.5%에 불과하지만 전체 과학기술 성과와 특허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또 이들은 국유기업을 제외한 민영기업 총생산액의 65%를 책임지고 있다.

정부의 자산평가법 제정도 이들이 기울인 노력의 산물이다. 중통성자산평고(中通誠資産評)유한공사의 류궁친(劉公勤) 사장은 "정협 위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신사회계층의 각 부문 전문가들이 경제와 사회의 각종 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아 정협에 많은 건의를 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반영됐다. 대표적인 것이 선진국의 자산평가제도를 벤치마킹한 국가자산평가법 제정"이라고 말했다.

통일전선부는 최근 "이들은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앞으로 보다 많은 구성원이 사회 변화의 주역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회과학원의 장완리(張宛麗) 부연구원은 최근 인민일보 기고에서 신사회계층의 엘리트화를 경계했다. 그는 "고학력에 고소득자인 이들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노동자 계층을 무시하는 이른바 '엘리트 함정'에 빠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이 최근 들어 권력을 배척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급진적 민주화를 요구하며 공산당 권위에 정면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사다.

이와 관련, 통일전선부는 신사회계층의 목표는 당이 추구하는 '선진 사회 건설'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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