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사건」 정계 연루설/3당 미묘한 공방전(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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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대중대표 타격 겨냥한 맹공 민자 국민/내각중립의지 추궁으로 맞불 민주
국회는 26일 정치,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국방부·안기부 국정감사에 이어 또다시 남한조선노동당 간첩단사건을 도마위에 올려놓았다. 이날 민자·국민당 의원들은 김대중민주당대표 비서 이근희씨의 국방기밀문서 유출과 관련한 책임소재와 정치권인사의 연루설 등을 거론,민주당의 「아픈 곳」을 집요하게 건드렸다. 반면 민주당측은 이 사건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제2의 공안정국조성 의혹설 제기로 정면돌파자세를 견지하면서 내각의 진정한 중립의지를 확인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이날 질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국민당의 계속되는 대민주당 공세를 느긋하게 지켜보았던 민자당이 김대중대표의 책임문제를 직접 들고 나오는 등 공격 수위를 한단계 상향조정한 것 같은 인상을 풍긴 점이다. 이는 앞으로 민자당이 대통령선거가 임박하면 할수록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을 더욱 야무지게 물고 늘어지겠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져 자칫 간첩단사건이 이번 대선의 최대이슈로 부각돼 3당간 혼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민자당의원들은 이날 이제까지의 은근한 태도와는 달리 김 대표를 곧바로 겨냥하고 포문을 열었다. 첫 질문에 나선 이한동의원은 『독일 동방정책의 주역인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기욤」 간첩단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국가안보문제에 관해서는 추호의 예외를 두지않고 자기도 직접 책임을 졌다』고 소개,김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유흥수의원은 『아직도 서경원사건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회로서는 이번 사건으로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며 김 대표로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과거를 들춰내 이번 사건과 연계해 공격을 가했다. 유 의원이 서씨 방북사건을 재론한 것은 안보문제와 관련,김 대표의 신뢰성에 흠집을 가하기 위한 전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세기·노승우의원 등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측 책임을 추궁했으나 「책임」이란 단어를 유난히 강조,정부보다 오히려 민주당과 김 대표를 향한 화살이라는 냄새를 풍겼다.
정치인 연루설에 대해서는 3당 의원들이 모두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질문에 담긴 민자·국민당과 민주당의 기본인식의 차이는 매우 컸다. 민자·국민당은 『정치인 연루자가 있는데도 정부가 큰 부담을 떠안을까봐 못밝히는 것 아니냐』는 관점에서 추궁했다. 민주당은 반대로 『관련된 정치인이 전혀 없는데도 전모를 밝히지 않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우리를 괴롭히려는 공작』이라는 측면에서 따졌다. 『과거 정치권에는 소위 정보정치라는 이름의 「정보정치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요즘은 혹시 정보기관의 「정치권 콤플렉스」가 있어 발표 못하는게 아니냐』(이한동의원·민자),『간첩하고 국정을 의논하란 말이냐. 불안해서 못살겠다. 희미하게 하지 말고 빨리 명확히 밝히라』(김동길의원·국민),『안기부가 정치권 관련설을 흘리는 것은 민주당을 음해하고 제2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한 음모가 아닌가』(홍기훈의원·민주) 등의 질문은 이같은 3당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계속된 민자·국민당의 공세에 대해 민주당도 굴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김상현의원은 『국민들 사이에는 선거때만 되면 남북분단의 뼈아픈 현실을 이용하려는 간첩사건이 계속 터져왔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만약 이번 사건을 대선에 악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국민여론은 민주당 편에 있음을 역설했다. 홍기훈의원은 『안기부의 공작정치를 막기위해 자체에 안기부를 해외정보전담기구로 기능과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의원은 현 총리의 답변이 끝난뒤 보충질문을 통해 『총리가 공안관리들이 써준 답변을 그대로 읽기만 해 간첩문제가 계속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됐다. 총리를 믿었는데 이렇게 무성의하고 생각없이 대답한다면 중립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앞으로 상황전개에 따라서는 중립내각을 몰아붙일 의사도 있음을 시사했다.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정부측 답변은 이제까지의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현승종총리는 민자당측의 민주당 김 대표 책임거론에 대해서는 모른체한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간첩 경계태세와 대공수사체제 등을 점검해 문제점을 고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 총리는 정치인 연루설에 대해 『간첩들이 정치권 인사와 광범위하게 접촉한 것은 사실이나 간첩활동으로 이어졌는지에 관해서는 관계기관이 수사중이어서 구체적인 사항을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의 음해·모략주장과 관련,『엄청난 간첩단 사건의 수사가 개인에 대한 모략이나 음해를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3당 의원들은 이날 간첩단사건을 집중적으로 따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측은 기어코 어느당의 욕심도 충족시켜 주지 않은채 계속 여운을 남겨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전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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