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수산이 본 이모저모(이웃사람 일본인: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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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자신 안 내보이는 소심증/「탁 터놓고 이야기」보다 상대방 의중 떠봐/지하철속의 독서… 눈길 둘곳 마땅치 않기 때문
일년에 한달쯤은 유럽에 가서 「야생동물보호협회」의 일을 하고 돌아오곤 하는 「도키다」씨는 아이를 낳지않고 사는 30대 부인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한국인도 많이 알고 있는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지하철을 타는 모습을 두고 미국인,한국인,그리고 일본인 자신을 비교한 우스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막 뛰어갔는데 열차가 그만 눈앞에서 문을 닫고 떠나버렸다고 하자. 이때 세나라 사람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미국인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나서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한국인은 사라져가는 열차 뒤꽁무니를 향해 「에라 가다가 빵꾸나 나 버려라」하면서 자기한테 아무 이익이 될 것도 없는 욕을 한마디 해댄다. 속이라도 후련해야 하니까. 자,일본인은 어떨까. 그 열차를 타려고 뛰어왔으면서도 마치 자신은 그 열차를 타려고 하지도 않았다는듯 슬며시 다른 곳으로 가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말았지만,이 이야기에는 어딘가 세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보여주는 열쇠가 있어 보였다. 열차를 타려고 뛰어왔으면서도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자기를 숨기고 다른 곳에 가 서는 일본인. 지하철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 모습이다.
그런 일본인이 지하철에 탔다고 하자. 한사람은 책을 꺼내들고 한사람은 눈을 감고 잠을 잔다. 지하철에서 모두들 책을 읽고 있더라 하고 감격어린 일본 여행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본다. 그렇다. 물론 많이 읽는다.
문제는 지하철에서다. 정말 일본인이 책이 그렇게도 좋아서 지하철만 탔다하면 책을 꺼내드는 것일까. 집에서도 읽고 그래도 시간이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도 읽고 회사에 가서도 책만 들여다보는 것일까.
또한 일본인은 밤에 잠도 안자고 일만해서 지하철을 탔다하면 잠을 자지 않을 수 없게 졸리운 것일까. 잠을 자도 저렇게들 잠을 자다가 내릴 역에서 무사히 내릴까 싶게 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려야 할 역에 가면 언제 자고 있었더냐싶게 냉큼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또한 일본인이다. 그들 흉내를 내느라 지하철에서 눈을 감았다가 아예 푹 잠이 들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낭패를 보는 쪽은 언제나 한국인인 나였다.
일본에서처럼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자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나만 그것이 이상했나 했더니 프랑스의 사진작가 한 사람이 지하철에서 자는 일본인을 주제로 사진집까지 펴낸 것을 보면,내 눈에만 그것이 기이해 보였던 것은 아닌가 보다.
책을 펴들거나 잠을 자는 일본인들과 함께 지하철에서 흔들리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졸리운 것도,책이 좋아서도 아니다. 눈길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는 아닐까.
일본인들은 열차를 타러 뛰어왔다가 그걸 못타도 남이 볼새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데 가서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 지하철을 타고나면 서로 마주보아야 하는 그 좌석배치 때문에라도 눈길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쓰는 소심자라는 말처럼,남에게 신경 안쓰고 편안하게 앉아있기 위해서는 이 소심자(?)들에게 책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자는척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마주보지 않고 각자 앞을 보게 좌석이 놓여있는 일본의 시내버스에서는 거의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물론 거기에는 앞사람을 힐끔거리거나 눈이라도 마주쳐서 그로하여금 당혹스럽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쓰임이 또한 깔려 있다. 잠과 책은 남에게 간섭받지도 간섭하지도 않는 승차 도구인 것이다.
독선적이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모든 것에서 상대적 가치를 중시하는 일본인이 지하철에서 만들어 내는 모습이다. 나쁜 쪽으로 보자면 자기를 내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 우리처럼 「탁 까놓고 이야기해서…」라는게 없다. 자기 이야기를 먼저 다 해 버린다는 것은 오히려 실례에 속한다.
일본인의 대화는 「…라고 생각합니다만」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언제나 자기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타협의 형식을 깔고 있다. 자기의견을 말하면서도 결국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하고 상대의 의향을 묻는게 된다. 서로 의견이 비슷하면 그제서야 「소우데쇼(그렇지요)」한다. 이렇게 의견을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은 두사람 사이의 이야기에서만이 아니다. 사회가 그런 틀안에서 굴러간다. 그러나 이렇게 조금씩 자기를 드러내는 소심한 대화법이나 자기 표현이 언제나 옳고 좋기만 한 것일까. 「화끈하게,탁 터놓고」 말을 해야하는 한국인에게 있어 일본인처럼 고약한 이야기 상대는 없다. 이쪽에서 제풀에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펴들거나 잠을 자는 일본인들이 「곤도와(다음번에는)…」하는 말을 했을때 이제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꼭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도록 하지요 하는 말때문에 이제나 저제나 그 집에서 불러줄 때를 나는 얼마나 여러번 기다렸던가. 그것은 다만 인사치레의 수사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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