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런 서슬은 어디로 가고…/조광희전국부기자·부산(국감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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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정감사는 주권자인 국민의 공공행정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행위다.
다만 국민 개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대신 권한 책임을 위탁받은 국회의원들이 맡아 할 뿐이다.
그래서 매년 살림살이가 마무리 될때쯤이면 국민들은 국정감사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매년 국감 때마다 실망을 느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단순히 국회의원들의 불성실이나 자질탓으로만 돌리기엔 이제 너무 화가 나는 일 아닌가.
23일 국회 재무위의 부산지방 국세청에 대한 감사만 해도 그렇다.
국민의 세금으로 비행기까지 타고 내려온 국회의원들이나,감사를 받는 국세청 간부들이나 마치 사전에 짜기라도 한듯 형식적이고 불성실한 자세로 일관하다 한시간여만에 어물어물 끝내버리고 점심챙기기에 급급했다.
국감반 의원들은 감사예정시간보다 50분이나 늦은 오전 10시50분쯤 미안한 기색조차 없이 나타나 배종규청장의 보고·답변도 다 듣지 않은채 『서면으로 대신하라』며 당초 예정됐던 낮 12시30분보다 10분 정도 서둘러 감사를 끝내고는 점심장소로 떠나버렸다.
이 때문에 이번 감사에서 기대됐던 ▲음성·불로소득자 1백51명의 명단 및 추징내용 ▲30대 재벌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제주도내 부동산면적 및 세금추징 현황 등은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자당의 K의원은 답변정리 중인 배 청장에게 『무얼 그렇게 심각하게 준비하느냐』며 『있는대로 하라』고 인심쓰는 아량(?)을 보이는가 하면 또 다른 민자당 의원은 음성·불로소득자 명단제출을 요구하는 국민당의 C의원에 대해 『개인신상에 관한 것』이라며 적당히 넘어갈 것을 유도하는 등 도대체 뭐하러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을 내내 연출했다.
이같은 「장난기」국감은 다른당 의원들도 마찬가지여서 민주당 C의원은 질의를 하기 전에 『서면으로 답변해도 좋다』고 몇번씩이나 강조하는 등 3명의 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다른당 의원들도 모두 서면답변을 요구했다.
있으나 마나한 감사를 한뒤 공무원들의 깎듯한 인사를 받으며 국감장을 빠져나가는 국회의원들이나,대충대충 넘어가는데 쾌재를 부르는 속마음이 표정에 역력히 나타나는 공무원들을 지켜보며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은 기자만의 생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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