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성역이 따로 있나…|스페인 여 투우사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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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사랑과 정열, 그리고 새하얀 모래에 스며드는 붉은 핏방울로 상징되는 스페인의 「토레오」(투우)마저 여성들의 도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스페인 대법원이 여성투우사에 대한 금지조치를 해제한지 이미 2O년이 지난 지금 스페인의 남녀공학 투우학교에는 수십명의 「토레라」(여성투우사)지망생들이 맹훈련을 쌓고있다.
졸업생 가운데 몇몇은 이미 소규모 투우장에서 3년생 수소와 맞서 싸우는「노비에라」 (신출내기 투우사라는 뜻) 까지 올라갔다. 이들 중 가장 선두주자는 크리스티나 산체스(2O)와 욜란다 카르바할인데 특히 산체스의 경우 지난달 마드리드 근교의 한 투우장에서 「피의 세례」를 받았다.
체중 3백15kg이나 되는 황소가 60cm나 되는 기다란 뿔로 그녀를 공중으로 치받아 올린 뒤 짓밟았다.
쇠뿔은 그녀의 위장근육을 관통했고 하마터면 자궁까지 찢어질 뻔했다. 산체스는 2주째 병원에 누워있다.
그러나 산체스는 『투우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황소 앞에 서면 기분이 너무 근사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남자들은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자란4년생 황소를 죽여야만 따낼 수 있는 「마타도라 데토로슨 (여자 황소 킬러)가 되려는 그녀를 두고 『부엌으로 돌아가라』『가서 설거지나 해라』는 야유를 서슴지 안는다.
그러나 산체스는 이미 올 한해동안 80마리의 황소를 죽였고 뛰어난 재능과 용감성에 대한 칭송의 표시로 황소의 귀와 꼬리까지 얻어냈다.
더구나 마타도라가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인 「마타도르 데 토로스」 (남자황소 킬러)들의 강력한 방대를 막아줄 수 있는 명 투우사인 아버지를 가진 점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카르바할의 아버지는 노동자로 딸의 매니저노릇을 할 시간도, 돈도 없다.
산체스와 똑같은 「노비에라」까지 올랐으나 더 이상 싸울 곳을 찾지 못해 과자공장에 입사원서를 제출했다.
『나는 새로운 길을 트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이젠 외로운 싸움에 지쳤다』
카르바할에게 올 겨울은 황소냐, 비스킷이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다.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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