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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시인」의 소시민적 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70년대 시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집 두 권이 나왔다.
71,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임영조·김명인씨는 최근 각각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 『물 건너는 사람』을 펴냈다.
이 두 시집에서는 4·19주체인 60년대 세대와 5·18광주항쟁의 80년대 세대 사이에 끼여 기를 펴지 못한 70년대 세대의 「소시민적 삶」과 시적 진실을 찾을 수 있다.
『칠월의 숲에 가면/시퍼런 함성이 들린다/이제 한창 겁 없고 혈기왕성한/재야의 사내들이/신선한 주장의 피켓을 들고/세상을 향해 사자후를 토한다//…//저 격렬한 구호 앞에서/나는 선뜻 동조하지 못한다/그저 몸둘 바를 모르고 가슴만 뛸 뿐/보호색은 회색이 무난한 시대/한 마리의 소심한 자벌레처럼.』
임씨는 그의 세번째 시집인 『갈대는 배후가 없다』에 실린 64편의 시를 통해 자신을 우리의 현실과 자연에 솔직하고 순진하게 투영시킨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천진함을 시대가 「회색분자」라고 탓해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시적 진실에만 충실한다. 하여 위 시「7월의 숲」에서와 같이 자신을 「한마리의 소심한 자벌레」라고 말하며 현실과 떨어져 현실을 그릴 수 있는 여유, 혹은 임씨 특유의 유희정신을 잃지 않는다.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배후가 없다, 다만/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댄 채/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갈대는 갈 데도 없다/그리하여 이 가을/볕으로 바람으로/피를 말린다/몸을 말린다/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해.』
이 시집·표제시에서 볼 수 있는 임씨 시에는 배후가 없다. 사상도, 전망도, 왜곡된 현실에 저항하는 왜곡된 목소리도 없다.
임씨는 시집서문을 통해 어떤 시류에 편승하거나 문학 외적 명분으로 위장하지 않고 오직「나의 시 쓰기」에만 매달려왔다』고 밝히고 있다.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무성한 초록귀때기 마다 퍼어런/잎새들의 생생한 바람소릴 달고 있다/…』
김씨의 세번째 시집인 『물 건너는 사람』에 실린 51편의 시들은 한 세계에 안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고 찾고 있는 시들이다.
시 「가을에」에서와 같이 김씨는 아직 염주로 만들어지지 않은 가을 숲속의 모감주나무에서도 염주소리를 들으며 뭔가 삶의 완숙을 갈구하고 있다.
『가을은 허전한 공복일 뿐, 어떻게 채워야하는 줄 모르고/이제 새끼치지 않는 짐승들만 어슬렁거리며/해거름 속을 돌아다니게 한다, 우리는/세월에 빌붙는 거지, 늙은/가을이 놓아 버린 거지』(「가을걷이」중)
시대와 현실이 요구하는 성향과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시대의 흐름에 찍소리 못하고 빌붙어 살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김씨는 「세월에 빌붙는 거지」라고 자조한다. 때문에 가을걷이인데도 「허전한 공복」「새끼치지 않는 짐승」의 불임의 시대와 현실에서 비롯된 삶의 빈터를 채우려 김씨의 시는 끝없이 방황하고 있다.
김씨는 이 시편들로 이달 초 소월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들 시인들의 자조·방황은 도덕적 당위론에 의해서든지, 아니면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야유로서든지 현실사회를 곧이곧대로 비추려다 삐만 앙상하게 남거나 깊이를 잃은 작금의 시들과 비교된다.
시적 진실에만 충실하려다 우리 시 세계에서 밀려난 이들70년대 시인들의 시속에 나타나는 삶의 진실들이 「뼈만 앙상한」「구호에 가득찬」오늘의 우리 시에 한 치유책이 될지도 모른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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