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위해 '가짜 국서' 눈감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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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선통신사의 최대 임무는 조선 국왕의 국서를 건네고, 막부 최고 책임자인 쇼군의 답서를 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1607년 제1회 통신사가 전달한 조선 국서는 원본이 아니라 통신사를 안내했던 쓰시마번(藩)이 24자를 지우고, 18자를 새로 써넣은 가짜였다.

통신사는 며칠 뒤 쇼군의 회답서를 받았다. 그런데 이것도 쓰시마번이 일부 내용을 손질한 것이었다. 결국 1606년 강화(講和)를 요청한 일본 국서도, 1607년 통신사가 가져간 국서도, 이때 받았던 쇼군의 회답서도 모두 위조됐던 것이다. 전대미문의 외교 사기극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603년 도쿠가와(德川) 막부를 연 이에야스(家康)는 조선과의 평화 회복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고, 이를 쓰시마를 통해 조선에 전달했다. 여기에 조선에서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강화를 요청하는 쇼군의 국서를 먼저 보낼 것, 둘째 쇼군의 호칭을 일본 국왕으로 할 것, 셋째 왕릉 도굴범과 피랍 조선인을 돌려보낼 것 등이었다.

그러나 무사(武士) 우위의 당시 일본은 이런 조건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막부의 묵인하에 쓰시마번이 가짜 국서를 만들었고, 가짜 도굴범을 조선에 보냈던 것이다.

조선도 국서와 도굴범이 가짜임을 알았다. 그러나 전쟁 상태를 종결해야 할 필요성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피해 복구와 피랍 조선인의 송환, 그리고 북방 대비책이 더 급했던 것이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했던 당시 외교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게 해서 양국은 평화 시대를 열어갔다. 그러나 가짜 국서를 계속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일본에서 국서 조작 사건이 드러나 장본인들이 처벌되자, 조선에서는 1607년 믿음(信)을 전한다는 뜻으로 첫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했다. 통신사 파견으로 양국 외교가 성숙기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손승철 교수 강원대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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