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돋보기] "구두로 이혼합의했다면 배우자 간통죄 고소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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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모(33)씨는 결혼 10년 만인 지난해 10월 남편 임모씨와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이혼서류는 작성하지 않은 채 말로만 한 합의였다. 그리고 집에서 나와 별거에 들어갔다. 정식 이혼 절차는 양육권과 재산분할 문제를 해결한 뒤 밟기로 했다.

두 달 뒤, 남편 임씨는 부인 이씨가 유부남 S씨(35)와 모텔에서 정(情)을 통한 사실을 알게 됐고,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S씨의 부인 K씨도 올해 1월 경찰에서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남편을 고소했다.

말로 이혼에 합의했을 경우 간통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또 간통에 대해 용서한다는 뜻을 표현한 뒤에 다시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까.

서울북부지법은 "이씨 부부의 경우 서면 합의가 없다 해도 양측 모두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었고 이혼에 합의했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이 사건을 맡은 형사2단독 도진기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혼 요구에 진정으로 응하는 말을 했다면 서면 합의와 같은 효력이 있다"며 "이혼 합의에는 남편이 이씨의 간통을 사전승낙한다는 의사표시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도 판사는 "K씨의 경우 이미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남편의 간통을 용서했으므로 이후 고소는 적법하지 않다"며 S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SBS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경우처럼 지수(배종옥 분)가 남편 준표(김상중 분)의 책과 옷을 화영(김희애 분)의 집으로 실어 보내며 준표와 화영의 동거를 사실상 인정했다면 간통죄는 성립할 수 없다.

대법원은 1999년 8월 "상대방의 간통 사실을 알고도 혼인을 지속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통을 용서했다면 고소할 수 없다"며 "명시적.묵시적이든 방식에는 제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정효식 기자

◆간통죄(형법 241조 2항)="간통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논할 수 있고, 배우자가 간통을 사전 동의 또는 유서(宥恕.너그럽게 용서)한 때는 고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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