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엔 발자국만 남기고 오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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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산과 들에 단풍이 절정을 이뤄가면서 전국 명산에 행락인파가 몰려들어 산들이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주말 설악산에는 10여만 행락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대청봉을 비롯한 명소들이 등산객이 버린 비닐봉지와 음식찌꺼기·음료수 깡통·빈병들로 쓰레기장이 되다시피 했다. 설악산관리 사무소 집계로는 지난 주말에만 버려진 쓰레기가 15t,5백여 마대에 이른다고 한다. 행락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현상은 해마다 심해져 금년들어 지난 9월말까지 설악산 고산지대에만 1백30여t이 쌓여 작년에 비해 8%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어디 설악산 뿐이겠는가. 전국에 있는 이름난 단풍관광지가 모두 이 모양 이 꼴들이다. 쓰레기 회수용 비닐봉지를 등산로 입구에서 나눠주고 있으나 봉지에 쓰레기를 담아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고 많은 사람들이 봉지조차 행락쓰레기와 함께 현장에 버리고 오는 형편이다. 이름난 큰 산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과 계곡에도 쓰레기는 널려 있다. 사람의 눈에 잘 안띄기 때문에 더욱 마음놓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마비된 시민들의 공중도덕심과 환경의식 때문에 우리의 산하는 오염되고 자연은 훼손된다. 흙이 썩고 지하수에 해로운 세균이 우글거린다. 전국의 약수터가 30%이상 세균에 오염돼 식수로서 사용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것도 순전히 이들 행락객들이 버린 쓰레기 탓이다. 이들이 버린 비닐봉지나 알루미늄 깡통,빈병 따위는 오랫동안 썩지 않고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파괴한다. 이로 인한 위해와 재앙은 결국 인간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선 국민들이 등산이나 관광에 대한 사고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우리가 힘들여 산에 오르고,관광지를 찾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공기,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먹고 마시고 떠들며 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분위기를 해치는 이런 행위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일정한 장소를 지정해서 취사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외의 장소에 들어갈 때는 음식이나 취사도구를 일체 휴대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선진국의 산이나 국립공원들은 한결같이 일정한 피크닉 장소를 지정하여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해 놓는 대신 그밖의 장소에서는 음식물을 먹거나 음주·도박,심지어는 고함을 치는 것까지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행락질서를 방임하는 선진국은 없다.
보이스카우트 세계연맹의 야외생활지침 슬로건을 보자.
『추억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며,발자국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두지 말자.』
우리에게도 절실한 행락지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행락문화에 깊이 반성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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