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불안·정책변경이 걸림돌(기업 설비투자: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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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문인력·기술도입 문제도 장애/확장위주서 「자동화」 등으로 선회
설비투자의 부진이유를 꼽자면 물론 갖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기업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처럼 생생하고 절실한 것은 없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분야의 시설투자규모를 연초 8천1백9억원으로 잡아놓았다가 지난 8월 38%가 줄어든 5천23억원으로 축소조정했다.
투자시기를 놓칠 수 없는 16메가D램의 양산체제 구축과 차세대 반도체연구개발부문을 제외하고는 투자를 대폭 줄였는데 16메가D램의 시장형성이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내년의 설비투자도 올해수준에서 묶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김동우이사는 『자금이야 어떻게든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금의 양보다는 얼마나 저리의 양질자금을 조달하느냐의 문제』라며 『그동안 고금리와 자금난이 설비투자의 발목을 잡았지만 하반기부터는 수익중심의 경영전략 변화와 시장성의 불투명이 설비투자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쏘나타를 이을 수출전략 차종개발 ▲전기자동차 및 저연비엔진개발을 위해 7천억원의 설비투자를 계획했으나 국민당 창당으로 인한 정치적인 이유로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기자 5천억원으로 줄여잡았다.
이 회사의 이종연부장은 『자동차는 적기에 모델개발이 생명인데 설비투자는 물론이고 제품개발·기술연구투자의 적기를 모두 놓치게 됐다』며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보다 염두에 두어야 하는 현대자동차가 국내의 정치적 이유로 투자가 지연됨으로써 내년부터 여러 측면에서 주름살이 나타날 것』이라고 정치불안정에 따른 기업투자의 왜곡을 우려했다. 이밖에 정책의 일관성 결여 등 여러가지 외부요인들도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고 있다.
가령 대기업이 외자로 대규모 설비투자를 꾀할 경우 적어도 4∼5년 정도 앞을 보고 자금조달 계획을 세우는데 정부는 지난 1년동안에도 외화대출 융자비율을 무려 세번씩이나 조정,기업들은 자금조달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기업들은 전문기술인력의 부족과 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 어려워진 것도 설비확대를 망설이게 하는 큰 요인으로 꼽는다.
설비투자의 흐름도 투자규모의 축소와 함께 뚜렷한 변화를 보여 지금까지 설비확장 위주에서 점차 자동화와 물류시스팀 도입 및 해외투자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제는 무조건의 생산확대보다 기업의 효율성과 상품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합리화 투자쪽으로 중심이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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