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운동(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8월 미 하원은 3백억달러가 소요되는 우주정거장 건설계획을 가결함으로써 그동안 논란을 거듭했던 「궤도선회 깡통」에 대한 비판은 일단 잠잠해졌다. 막대한 재정적자 때문에 더이상 우주정거장사업 같은 데에 자원을 낭비할 수 없다는 반대론이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살아남게 된 것은 39개주에 걸쳐 수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표면적인 이유에 더해 미국만이 보유한 독특한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야망 때문이었다.
초립자가속기 건설계획도 너무나 엄청난 자금부담 때문에 추진을 중단하자는 결의안이 의회에 제출돼 하원에서 처리됐으나 상원은 그 건설반대안을 부결시켰다. 최첨단의 과학기술 개발을 계속하느냐,아니면 거기에 소요되는 돈이 당장 국민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업에 쓰느냐 하는 입씨름으로 미 의회가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미국만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일본이나 유럽국가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다는 거인의식이 미국 각계인사들에게 잠재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독창적인 연구의 발진기지가 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를 놓고 지금 정부와 산업계에서 머리를 짜고 있다. 언제까지나 「제2의 일본」,또는 「제2의 미국」만을 추구하다가는 결국 손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더이상 국부의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스위스나 스웨덴과 같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기술로 그 부문에선 미·일도 무릎을 꿇게하는 「작은 거인」이 되자는게 최근 과학기술처가 펴고 있는 정책의 골간이다.
우리나라의 총체적 기술수준은 미국의 10%도 되지 않는다. 창조적 기술의 원천인 기초과학수준은 88년을 기준으로 볼때 세계 38위에 머물러 있다. 첨단기술이라해서 주요 기업들이 개발해낸 제품들은 아직도 해외의존도가 50%대에 육박한다. 우리만의 독점적인 수요를 겨냥한다면 초고집적 반도체나 인공지능 컴퓨터 등에 어떻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중국의 유명대학들이 앞다퉈 기술개발회사를 거느리려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최철주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