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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택한 「박태준최고」/김 총재­박 최고 「광양담판」결별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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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측 “대선타격” 수습안간힘/민정계 향배에 양쪽 다 큰 부담
박태준최고위원의 선거대책위원장직 수락보류로 1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민자당의 내공은 10일 김영삼총재와 박 최고위원의 「광양담판」결렬로 파국에 직면했다.
김 총재는 9일 저녁 박 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의사를 전달받고 부랴부랴 광양에 갔으나 내각제개헌의 개선공약을 요구한 박 위원의 주장을 일축했다.
○…김영삼총재와 박태준최고위원은 10일 오전 10시15분부터 단독대좌를 시작,오후 1시55분까지 3시간40분동안 마라톤 담판을 벌인끝에 결별을 선언했다.
광양제철소 본부건물 2층 회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낮 12시20분쯤 박 회장 숙소인 백운대로 옮겨 오찬을 함께 하며 최종 절충을 계속.
회동이 끝난뒤 두 사람은 현관까지 걸어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김 총재는 약간 어두운 기색이 담겨있는 진중한 표정으로 『박 최고위원은 한마디로 포항 광양신화를 이룩한 분』이라고 말문을 연뒤 『그러나 정치를 하는동안 길을 잘못들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 결과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
김 총재는 『박 최고위원은 앞으로 평생을 바쳐온 경제건설을 계속 하겠다는 생각이며 정치에 대해선 이제…』라고 밝혀 박 최고위원이 탈당을 고수했음을 밝혔다.
김 총재는 박 최고위원의 결심파장을 줄이려는듯 『인간적으로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인간적 관계에 있어선 과거보다 몇배 더 서로 의논하고 연락할 것이며 박 최고위원은 우리한테 협조해줄 것』이라고 했다.
김 총재의 얘기가 끝난뒤 기자들이 박 최고위원에게 『그렇다면 정계은퇴냐』고 묻자 박 최고위원은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이 다음에 천천히 얘기합시다. 차차 알게 되겠지…』라고 답변해 여운을 남겼다.
박 최고위원은 『사퇴서와 탈당계를 냈느냐』는 질문에 『아마 과정이 진행중일 것이며 당사무처에서 적절히 처리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해 적어도 탈당까지는 기정사실화.
○…박태준최고위원은 10일 김영삼총재가 광양제철소 본부건물앞에 도착하기 20여분전부터 작업복 상의를 입고 정석모의원·최명헌·이동진 전 의원 등과 함께 현관에서 대기.
박 최고위원은 『이번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제목이 있지 않느냐며 『내 출마문제는 바람처럼 이미 다 지나간 얘기』라고 대답.
9일 밤 박 최고위원을 만난 한 인사는 『박 최고위원은 자신이 출마할 생각은 완전히 버렸고 국민후보옹립을 위해 김준엽 전 고대총장·강영훈 전 총리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타진하고 있다』고 전언. 이 인사는 그동안 박 최고위원이 이종찬의원진영,정주영대표 등 국민당쪽,박철언·김용환·장경우의원 등 탈당추진파들과 접촉했던 사실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박 최고위원이 이번에 명분없이 주저않는다면 이들 반양김정치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당초 박 최고위원은 9일 밤 최고위원직 사퇴와 함께 탈당 및 의원직 사퇴도 동시에 결행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정국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어 탈당·의원직 사퇴는 빠르면 내주께 제2단계로 단행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전 10시 정각 본부건물앞에 도착한 김 총재는 웃는 얼굴로 박 최고위원과 악수를 나누었으며 박 최고위원은 『어저 오십시오』라고 인사.
김 총재를 수행한 김영구사무총장은 어색한 얼굴로 『또 오게 됐습니다』라고 인사. 두 사람과 김 총장,정 의원,최·이 전의원 등 6명은 곧장 2층회장실로 올라가 차를 나누며 환담. 김 총재는 『오늘 경주로 가게되어 있었는데 이곳으로 오자 비행장에 나와있던 기자들도 전부 따라왔다』라고만 말한뒤 평소와는 달리 서둘러 『기자들은 좀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해 회동의 긴박함을 보여줬다. 김 총재와 박 최고위원은 오전 10시10분쯤 다른 방으로 옮겨 단독대좌를 시작.
○…김영삼총재는 9일 밤 상도동 자택에서 최창윤비서실장과 오인환특보 등 비서실 멤버들을 만나 이번 사태 수습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최 실장 등은 박 위원을 설득,선대위원장직을 수락토록 하고 끝까지 이를 고사할 경우 평당원으로 남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2단계 수습책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박 최고위원의 당내 민주화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평당원으로 남더라도 최대한의 예우와 함께 대선후의 지위까지도 보장한다는 것이다. 다만 내각제 개헌문제를 선거가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공약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차기정부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토록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위원의 선대위원장직 수락보류와 최고위원직 사의표명으로 당내에서 가장 충격과 동요를 일으킨 것은 민정계다.
박 위원의 정치력은 차치하고라도 미묘한 알력관계는 보이고 있는 김윤환·이춘구·이한동·박준병의원 등 민정계 중진그룹과 당내 비주류세력들을 상징적으로 얽어놓은 역할을 박 위원이 해온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박 위원의 행보가 탈당후 신당합류로 이어질 경우 당내 일부세력의 이탈은 불가피하다.
김윤환의원이 김 총재에게 박 위원을 어떻게 해서라도 붙잡으라고 요구한 것이나 이춘구·이한동·박준병의원 등이 8일 포항으로 내려가 박 위원을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박 위원이 탈당까지 결행할 경우의 파장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연말대선에 엄청난 타격이라는데는 인식을 같이하지만 파급효과를 최소화할 경우 김 총재의 당선은 무난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엇갈려 있다. 김 총재 대통령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쪽에서는 박 위원이 탈당하더라도 동조탈당할 의원수가 10명을 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김 총재의 당운영스타일 등에 불만을 가진 관망파들은 이 사태를 심각히 바라보고 있다.
박 위원이 내각제개헌 공약과중·대선거구제 도입,김 총재의 사조직인 민주산악회의 해체 또는 활동축소요구를 내놓은 것도 관망파의 정서를 겨냥한 것이다.<신성호·김두우·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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