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CNG 버스 충전소 확충"에 주민 "반대" … 해법 없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잘 걷기 위해서는 환경이 좋아야 한다. 특히 공기가 깨끗해야 건강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서울시는 '걷기 좋은 맑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내 버스를 압축천연가스(CNG)를 사용하는 친환경 버스로 교체하고, CNG 충전소를 시내 곳곳에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부 주민이 "우리 동네에 CNG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은 안 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서울시와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현재 서울시와 주민 간의 대립이 가장 첨예한 곳은 평창동이다. 충전소 건립이 주민 반대로 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서울시가 최근 시 청사 안에 충전소를 건립한 것도 평창동 주민의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다. CNG 충전소 설치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서울시와 평창동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평창동 주민들이 CNG 충전소가 세워질 자리에 있는 건물에 플래카드를 붙이거나 구호를 써놓고 ‘CNG 충전소 설립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김태성 기자


서울시의 입장
"걷기 좋은 도시 위해 저공해 시설 불가피"

서울시는 걷기 좋은 도시의 전제조건인 맑은 대기 질을 위해서는 경유 시내버스를 CNG 버스로 교체하는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CNG 버스 보급을 위해서는 연료를 공급하는 CNG 충전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서울시는 강조한다. 현재 운행되는 시내버스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유 버스가 배출하는 매연에는 시민 건강에 좋지 않은 미세먼지가 다량 포함돼 있다. 이 미세먼지는 지름이 0.001㎜ 이하로 작아 인체에 쉽게 흡수된다. 사람이 이런 미세먼지를 많이 마시면 심한 경우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CNG 충전소 왜 필요한가=서울시.환경부 등에 따르면 CNG 버스는 미세먼지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경유 차량의 각각 16%, 55% 수준이다.

경유 버스 한 대가 1년간 배출하는 미세먼지의 양은 57.37㎏. 이에 따라 5월 말 현재 서울의 시내버스 7766대 중 3869대가 CNG 버스로 교체됐다.

서울시 맑은서울추진본부 유석윤 팀장은 "남은 경유 버스 3897대가 한 해에 배출하는 미세먼지 총량은 223.5t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60㎍/㎥이었다. 반면 파리는 21㎍/㎥, 뉴욕은 22㎍/㎥였다.

서울시는 CNG 버스와 충전소가 충분히 보급되면 이런 미세먼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2010년까지 모두 51곳의 CNG 충전소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35곳을 건립했다. 올해 안으로 6곳을 더 건립할 계획이지만 주민 반대 등으로 난관에 부닥쳐 있다.

◆"충전소, 위험하지 않다"=충전소 지하에는 가스 저장 시설을 별도로 갖추지 않아도 된다. 시 외곽의 가스회사에서 지하 가스관을 통해 공급된 가스를 지상 충전소에서 압축해 차량에 충전하는 방식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도시가스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유 팀장은 "CNG 가스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혹시 누출되더라도 바람에 금방 날려가기 때문에 고여 있다 폭발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성대 윤재건(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사고 빈도로 따지면 CNG 충전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위험할 게 없다"며 "버스 차고지마다 설치돼 있는 경유 주유 시설을 CNG 충전소로 바꾸면 오히려 차고지 주변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는=선진국 시민들은 CNG 충전소 설치를 꺼리지 않는다. 일본 에이다바시 충전소는 아파트와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의 건물 옥상에 자리 잡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시에서는 일반 가정에 천연가스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독일에는 LPG와 CNG는 물론 경유.휘발유 등을 한곳에서 충전할 수 있는 복합충전소가 곳곳에서 운영 중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CNG 차량 이용이 늘면서 현재 총 600만 대가 보급됐다. 최근 5년간 420%나 증가했다.

신준봉.이수기 기자

평창동 주민들 입장
"안전성 입증 안 된 채 주택가에 못 짓는다"

'가스 충전소 NO! 버스차고지 NO!'

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주택가.

주변에는 CNG 충전소 설치를 반대하는 플래카드 10여 개가 어지러이 걸려 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2000여 평의 공터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이곳에 버스 공영주차장과 천연가스충전소 등을 짓기 위해 땅을 샀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부닥쳐 6개월이 지나도록 공사를 못하고 있다. 평창동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오세훈 서울시장을 면담하고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수백여 명이 모인 반대집회도 10차례 이상 열었다. 김덕배(75) 비상대책위원회 회장은 6일 "친환경 주택지를 만든다는 이유로 건물 증개축도 못하게 묶어놓았던 우리 동네에 이제 와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가스 충전소를 짓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유.무해성 입증 안 됐다"=주민들은 버스 차고지와 CNG 충전소가 들어설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는 주민들에게 천연가스 차량은 매연이 거의 없고, 질소산화물 등 환경오염 물질도 적다고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김 회장은 "유해.무해 여부는 시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말일 뿐 발암물질이 있는지 주민들이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CNG 충전소가 설치되면 하루 130여 대의 버스가 이곳에서 가스를 채운다는데 버스가 내뿜는 매연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전소 위치도 문제"=이 지역 시.구의원들도 반대의사를 밝혔다. 서울시의회 남재경(46) 의원은 이날 "현행법상 공영주차장과 가스충전소 등은 상업지역과 준공업지역에만 들어설 수 있다"며 "일반 주거지역인 이곳을 용도 변경까지 해 충전소를 지으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어떻게 공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평창동 일부 지역을 상업지역 또는 준공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할 예정이다.

종로구의회 안재홍 의원도 "충전소 예정 부지는 평창동 주택가 한복판이어서 가스충전소 설치 규정에 따라 주택가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 주민 김모(56.여)씨는 "충전소가 생기면 집 바로 옆으로 버스가 드나들어 교통사고도 많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낙후지역 소외감도 걸림돌=남 의원은 "평창동은 환경보전이라는 미명 아래 수십 년간 집의 증개축도 못하게 한 곳"이라며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도 제대로 못하며 살았는데, 시가 일방적으로 공해시설을 짓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 등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가 부족했던 점에 대한 불만도 높다.

일부 주민은 이 사업이 특정 버스 업체에 편의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서울시 측은 "특혜 의혹 등은 말도 안 된다"며 "주민에게 CNG 충전소의 장점을 적극 알리고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