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광동성|농촌 공업화…「중국판 새마을」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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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을 따라잡자.』
광주시 정부인사들이 80년대 말에 세운 다짐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조차 거의 없던 광동성 정부대표단이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고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중국의 개방·개혁정책을 가장 뛰어난 실적으로 쌓고 있던 광동성이 한국의 발전을 보고서는 중국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구 9천만명, 면적 21만 평방㎞(해남성이 분리되면서 19만 평방㎞로 축소). 79년 개방·개혁 발표 후 평균 공업발전속도 년 20%, GNP성장률 13%.
규모와 발전 속도면에서 광동은 한국과 흡사한데가 많다. 최근 63층 고층빌딩을 완공,『우리도 63층 빌딩이 있다』는 식의 한국을 의식한 비교가 흔하다.
신흥공업국(NIES)으로 꼽히는「아시아의 4마리 용」가운데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모두 중국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단 하나 예외인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광동이 넘겨받겠다는 각오를 이들은 오늘도 되새기고 있다.
광동성 지도부는 광동이「아주 4용」에 진입할 시기를 앞으로 15∼20년 후라고 말하지만, 내심으로는 8년이면 가능하리라는 자신을 보이고 있다.
광동성은 중국의 경제발전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적을 올리면서 안으로 개발효과를 파급시키는 한편 밖으로는 국제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 승격도 줄이어>
광동성에는 모두 20개의 시가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최근 2, 3년 사이에 현에서 시로 승격된 신생도시들이다.
『남해의 철현설시를 열렬히 축하한다』는 내용의 전면광고가 최근 1주일간 홍콩의 중국계 신문들을 뒤덮었다.
광동성의 막내둥이 남해현이 드디어 시로 승격된 것을 축하하면서 관계기업과 단위 지역에서 앞다퉈 선전에 열을 올린 탓이다.
뿐만 아니라 남해에 이웃한 무명의 농촌 서초진이 섬유·기계·벽지·우산등 생산품목과 해수욕장까지 컬러사진으로 소개하면서 다음 번의 시 승격을 예고하고 있다.
이밖에도 화순진·황기진·양동현·양춘현 등이 자기마을의 경제적 입지 조건과 투자여건상 유리함을 지도를 곁들여 자세히 선전하고 있다.
이른바 농촌지역의 공장인 향진기업을 중심으로 향·진단위의 지방이 공업화한 시로 발전하는 추세는 광동성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중국농촌사회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보게 하고 있다.
당초 향진기업서 출발한 중산시의 남방제약은 지금 종업원 1천여명의 공장으로 발전했다. 광동성에서는 이 제약회사의 종업원들은 모두 부자로 통한다. 공영사(기술자급)의 월급이 보통근로자의 10배인 2천∼3천위안(원)이며, 공장장 월급은 11만위안이나 된다.
백운산 향진기업은 종업원 3천명규모로 전자·제약 등으로 지투안(집단) 즉, 백운산그룹이 됐다. 연간매출 총액은 10억 위안(미화 2억 달러).
숭덕시의 한 업자는 불과 3년 전 맨 손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수억위안의 재산을 거머쥐었다. 홍콩업자와 손을 잡고「순간온수기」를 반입해 광동성에 보급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남긴 것이다. 청결함과 목욕을 즐기는 남방사람들이 경제형편이 나아지면서 너도나도 온수가 나오는 새로운 문명이기를 다투어 사들였던 것이다.
숭덕시는「선풍기의 왕국」으로 불리며 중국 최고소득수준을 유지하는 지방이기도 하다.
그만큼 잘살게 된 현은 전국에 1백개 이상 손꼽을 수 있으며, 저마다 자기고장이 제일 잘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경공업·전자·섬유·화학·신발·방직 등으로 발전한 광동성 20개시는 개방·개혁정책이 시행된 10여년에 걸친 결실이다.『머리를 굴려라. 잠을 줄여서라도 돈을 벌자』광동성 사람들은 스스로들「머리가 깬 사람」이라고 부른다.
홍콩·독일·일본·대만등지에서 온 외자기업이 1만개가 넘는 광동성(심천 제외)은 전국외자기업수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그만큼 광동성은 농촌지역의 도시화 내지 공업화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광동성은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 개발이 늦은 동북부 산간지방인 소관·하원·매주 등 3개시를 경제특구로 만들었다.
개발이 앞선 연해지방에서 점차 산간지방으로 경제발전의 효과가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소작농까지 등장>
전체면적의 64%가 산간지방인 광동성에서 인구의 41%가 살고 있으면서도 공업 총생산액 10.4%, 수출은 2.5%에 불과하다.
사진진양(28)은 산자수명하다는 매주 출신. 수입이 적지만 직장이 보장되는 국영기업체나 농촌과 같은 안정된 생활환경이 더 좋지 않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그것도 살아가는 한 방식이다. 그렇지만 발전이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물가가 오르고 소비가 늘어 생활에 압박을 받기 때문에 소극적 안정보다는 적극적 벌이에 나서야 한다는 태도다.
도시화와 공업화의 물결이 농촌오지에까지 미치면서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크게 변한 것이다.
지난 6월에는 마오쩌둥 시절 사회주의 농촌건설의 성지였던 대채에서까지 광동성 동완시로 젊은이들이 취직을 위해 대거 이주하여 이목을 끌기도 했다.
농촌인구의 도시이주와 전업은 뚜렷한 대세로서 중국사회의 기층으로부터의 변모양상을 보이고있다.
통계에 따르면 발전이 늦은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의 경우 농업노동자가 전체주민의 94.2%, 향진기업 종사자 1.4%의 비율. 이에 반해 개발된 강소성 화서촌은 10%대70%로 역전돼 있다.
중국전체 9억명의 농민가운데 향진기업에 흡수된 노동력은 약 9천만명. 농촌일손이 부족해진 광동성의 경우 전국 각성으로부터 4백만명의 농업노동력을 이미 흡수했으며 해마다 2만명씩의 유입이 지속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광동성에는 최근 소작농이 출현하고 있지만 아무도 자본주의 악습의 부활이라고 꼬집지 않는다. 보다 낙후한 지역에서 흘러든 농민들이 도시나 공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한편으론 지주 신분이 된 광동원 주민 농민들이 농지를 빌려주고 일정한 액수의 수확료를 챙기고있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호구제를 실시하여 농민이 토지를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해왔다. 그러나 이제 이같은 정책이 완화돼 농민의 도시이주는 허용되고 있는 단계다. 공업화에 불가피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인정한 셈이다.
이와 관련, 관영 신화통신은 최근『중국의 농업과 농민 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있다』는 내용의 긍정적 보도를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먹고 입고(온포)문제해결에만 매달려왔던 농업이 생산의 질과 경제효과를 추구하기 시작,『농업이 생산물위주경제(산품경제)에서 상업경제로 전통적 농업에서 현대화된 농업으로 대변혁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통신은 농민과 토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50년대에 토지개혁, 80년대에 가정생산 청부제라는 변혁이 있었으나 90년대는 농민과 시장의 관계가 수립되는「혁명」을 맞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구호가 북한에 나돌고 있지만 이 논리를 빌릴 경우 쌀이 상품화되고 있는 중국은 더이상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국정부는 지난달 전국 19개성 4백여개 시·현을 자체실정에 맞춰 곡물거래의 수량과 가격을 완전 자유화함으로써 쌀의 상품화를 성립시켰다.
농민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쌀이 상품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계획성경제로 해결 못하던 문제들이 시장이 풀어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쌀 상품광고 치열>
광동성에는 이미 쌀의 상품광고가 치열하다.
금양·금화·금복·봉성·백연·광보등 갖가지 쌀품종들이 인쇄물과 TV를 통해 소비자를 부르고 있다.
신화통신은 국산 쌀보다 호주산과 태국산 쌀이 인기를 끌고있으며, 가격도 ㎏당 1위안 꼴의 중국산보다 8∼9배나 비싼 외미가 잘 팔린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동북지방의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광활한 옥토를 밀림같이 덮고 있던 고량과 옥수수밭을 바라보면서『왜 이리 아까운 토지에 한가지 작물만 심었는가』고 물었을 때 한 농민은 간단히『중앙의 지시』라고 답변했었다.
이제「중앙의 지시」는 시장으로 바뀌고 농민들이 작물의 종류와 식부 면적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시장이 농업생산의「중추신경」으로 되면서 80년대초 국가 계획수매의 대상농산품수가 1백17개에서 단 2개로 줄어든 한편 생산량은 급속한 증가를 가져왔다.
광동성의 경우 최근 6년간 채소출하량2배, 가금류 2·5배, 돼지고기 40%, 과일 3배 증가라는 풍성함을 누리고 있다.
이를 통해 광동성은 해외시장까지 농산품을 수출, 지난해 20억3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광동성 내지에서 생산된 1천여종의 상품을 수출한 것과 맞먹는 액수다.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관문으로서의 광동, 마카오·홍콩과 더불어 화남경제권의 중추인 광동.
하남, 운남, 신강성 등의 넓은 농촌 배후지를 가진 광동은 또 다른 「아주의 용」으로 등장하기 위한 날개짓을 힘차게 하고 있다. 【글 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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