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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충일, 조종사 전우 53년째 기리는 노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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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 임택순 대위

제52회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전 서울 국립 서울현충원 장교 묘역. 6.25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노병 4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1953년 3월 6일 공군사관학교(공사) 출신 조종사 중 가장 먼저 산화한 임택순 대위(당시 23세.공사 1기)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공사 1기생 이관모(79) 예비역 준장은 "우리는 출격 전 이미 생사를 초월했고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각오하고 떠났다"고 말했다. 결국 54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동기생인 임 대위를 만난 셈이다.

임 대위는 53년 강원도 고성군 '351고지' 전투 당시 F-51 무스탕 전투기로 출격해 근접 폭격을 하다 적군의 대공포에 맞아 산화했다. 참석한 노병 중에는 임 대위와 함께 생사를 넘나들던 공사 동기생 12명도 있었다. 이들은 55년 현충원이 생긴 이후 해마다 참배해 왔다고 한다.

"차렷! 경례. "

이들은 6.25의 최대 격전지였던 351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임 대위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70~80대 노병들의 표정과 몸짓에선 창공을 누비고 다녔던 20대 조종사 시절의 절도와 투지가 느껴졌다. 351고지는 휴전 직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남북이 총력전을 펼쳤던 곳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전장(戰場)의 치열한 장면은 그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6.25 참전 공군 조종사들과 전우회 회원들이 5일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고 임택순 대위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관모 예비역 준장은 "대공포탄이 빗발처럼 쏟아지고 전투기는 극심하게 흔들렸다"며 "포화를 뚫고 적을 공격하는 동안 목표물 말고 다른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351고지는 밤낮의 주인이 다를 만큼 격전을 치렀던 곳이다. 해당 지역의 전투를 맡은 우리 육군의 사단장이 두 달 동안 네다섯 번 바뀌었다. 북한군은 351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막대한 병력과 화력을 투입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우리 공군은 지상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6.25 기간 중 최대 규모의 근접 지원 작전으로 맞섰다. 김영환(80) 예비역 소장은 당시 임 대위의 후속 편대로 비행 중에 그의 산화 장면을 목격했다. "전우를 잃었다는 참담한 심정으로 남아 있던 기관포를 모조리 쏘아댔다"고 회상했다. 마치 살아 있는 전우를 적지에 놔둔 채 돌아오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는 심경도 털어놓았다.

임 대위와 같은 편대에 속했던 조종간부 1기 출신의 최성달(75) 예비역 중령은 "임 대위는 낙하산 탈출이 가능했으나 그대로 적진으로 돌진해 전사했다"고 전했다. 노병들은 임 대위의 묘소 참배 뒤 공군 조종사 20여 명의 묘소를 일일이 찾았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에게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김영환 예비역 소장은 "우리는 당시 조국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뚜렷한 사생관을 가지고 있었다"며 "병역을 회피하려는 일부 젊은이들이 그런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종찬 기자<jong@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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