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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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어머나! 카드 또 만들었어요?』얼마 전 퇴근한 남편의 양복 호주머니에서 소지품을 꺼내다 새 신용카드를 발견하고 놀라며 한 소리다.
『김 대리 친구가 은행에 다닌다는데 하나 꼭 해달라고 해서….』
남편은 머리를 긁으면서 거절해도 막무가내였다며 잃어버리지 않게 보관이나 잘 하라고 말했다.
그날 밤 화장대 서랍을 열어 우리집 카드갯수를 모처럼 세어 보았다.
은행신용카드 3개, 백화점카드 4개, 의류업체카드 5개, 현금카드 3개 등 무려 15개나 되었다.
이중에는 꼭 필요해서 일부러 만든 것도 서너개 됐지만 나머지는 남편친구나 친지들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만들어 놓고 쓰지 않는 것들이었다.
요즘은 은행 말고도 의류·구두업체들이 패밀리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경쟁적으로 판촉을 벌이는 바람에 우리처럼 카드진열장처럼 되는 집이 많다고 한다. 도대체 카드 한 개를 생산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물론 발행회사들은 이를 통한 판매증진효과가 더 크다는 계산이 섰기에 이처럼 카드를 남발하겠지만 한심한 물자낭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더 심각한 폐해는 충동구매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카드회사들이 세일 때마다 보내오는 두툼한 선전우편물에 이끌려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싼 맛에 샀다가 후회한 일이 여러번 있다. 업체들의 무리한 경쟁에 따른 낭비적인 요소는 이 뿐이 아니다.
은행의 예금 유치 경쟁으로 남발되는 1백원 입금된 통장들, 그때마다 새로 파기 십상인 2천원짜리 목도장에다 요즘 유행하는 1회용 당원증까지….
회사건 정당이건 간에 이처럼 속빈 외형 부풀리기 경쟁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당분간 출근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하나 해야겠다. 『지연아빠, 카드 만들라는 부탁 받으면 과감하게 거절해야 해요.』<서울 방학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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