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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탄소 과소비'인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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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구 온난화는 인류에 축복?'

화석연료가 요즘만큼 대량 소비되지 않았던 10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의 세계적 과학자의 이런 주장은 먹히는 분위기였다. 이온 물질 연구로 1903년 노벨 화학상까지 받은 아레니우스는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대기를 덥게 한다는 사실을 1890년대에 본격 규명했지만 문제의 심각성까지 깨닫지는 못했다. 그가 '완성 중인 세계'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미래상은 사뭇 목가적이었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온난화가 진행되면 추운 지역이 따뜻해지고, (지구 전체로) 곡물의 수확이 늘어 급증하는 인구 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북극에서 멀지 않은 나라 스웨덴 출신인지라 좀 더 따뜻한 날씨와 비옥한 땅에서 살기를 염원했는지 모른다.

이제 온실가스가 해롭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유엔의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최근 이런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인간의 '탄소 과소비'가 지구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며, 인류의 미래를 살리려면 이산화탄소 증가세를 8년 안에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쾌한 총론에 비해 각론은 퍼즐처럼 복잡하다. 지구 온난화 현상은 특히 중위.고위도 지방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히말라야 만년설의 경우 50년 안에 몽땅 녹아내릴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온다. 온난화라는 용어 때문에 으레 폭염과 가뭄을 연상하지만 재앙의 형태는 홍수와 해일.태풍 등 다양하다. 가장 심각한 건 부국과 빈국 사이의 메우기 힘든 간극이다.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바닷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 국토의 90%가 사막이 될지 모르는 몽골. 이처럼 온난화에 속수무책인 나라가 수두룩한데 선진국들은 탄소거래소.녹색기술 같은 첨단 과학.문명.자금력으로 파고를 넘고 있다. 사활이 걸린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국가 간 '탄소 전쟁'에 에너지 대국인 중국까지 가세했다.

6일부터 사흘간 독일에서 열리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의 최대 쟁점은 지구 온난화다.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해 '공공의 적' 소리를 들어온 미국이 중국.한국 등 15개국을 G8의 온실가스 논의에 끌어들이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동안 유럽연합(EU)과 맞섰던 전선을 전방위로 확대하는 모양새다. 세계 10대 탄소 배출국인 우리나라도 이제 미국.EU.중국의 3각 결투를 불구경하듯 하고만 있을 수 없게 됐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