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수산이 본 이모저모(이웃사람 일본인: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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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땅으로 향하는 복식문화/모든 옷의 선 바닥으로… 입는 사람의 몸 억압해/긴장감 주는 기모노 자유롭고 풍성한 한복과 대조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살고 있는 하세가와 부인의 「기모노」 차림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어느 한부분 여유와 흐트러짐이 없는 정제된 아름다움이다.
전후좌우의 구별이 없게 직선으로 몸을 감싸며 뻗어내려간 몸매의 선에 날개를 접듯 오비(허리에 매는 띠)가 매어져 있는 모습은 절제와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이와는 달리 한복 치마저고리는 자유롭고 풍성하다.
단순하면서도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원색이 주조를 이루고,몸의 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뻗어내린 곡선의 그 넉넉함은 우리 옷의 자랑스러움의 하나다.
치마저고리와 기모노에 공통점이 있다면 한쪽이 띠로,한쪽은 치마폭의 풍성함으로 허리의 선을 감추는 점이다.
이점은 분명히 서양의 옷과 다르며,허리의 윤곽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동양권의 중국과도 다르다.
그러나 일본의 기모노는 무엇보다 그 걸음걸이의 폭이 좁아질 정도로 몸에 붙여 조여입는 옷이다. 조여입은 거기에 또 띠로 허리를 묶는다.
밑으로 둥글게 퍼져나가는 치마폭의 여유만이 아니다. 외씨 버선발이 보일듯말듯 치마폭을 차며 나아가는 한복 차림과는 달리 일본의 기모노는 옷의 선을 밑으로 가라앉힌다.
기모노의 맨 밑은 안에서부터 감아올려 두텁고 무거운 밑단을 만들어 옷을 바닥에 착 가라앉게 한다.
모든 옷을 그렇게 바닥으로 가라앉힌다. 기모노 차림의 여인이 보여주는 긴장감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땅으로 가라앉은 옷답게 단정하기는 하지만 넉넉한 자유로움이 없이 입는 사람의 자제가 요구되고 몸을 억압한다.
게다가 궁중의 여인들이 입기 시작했던 옷 가운데는 「가자미」라고 해서 발뒤로 자루처럼 질질 끌고 가게 되어 있는 것까지 있다.
결혼식 신부의 긴 드레스 자락처럼 바닥을 쓸고 가는 옷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옷은 무엇보다 풍성하다. 내복같이 다리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일본 남자들이 들고 뛸때 우리는 몸통이 들어가고도 남게 바지통을 헐렁하게 지어 그것을 대님으로 묶어 입고 살았다.
두나라가 한쪽은 몸에 붙여 조여 입을때 한쪽에서는 풍성하고 헐렁하게 그 여유를 즐겼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바라보면 우리의 옷은 하늘을 향한 흩날림으로 가득차 있다. 두루마기는 바람에 옷폭이 날린다.
옷고름은 손짓하듯 하늘로 나부끼고 치마폭은 바람에 일렁거린다. 갓끈마저 어깨너머로 흩날린다.
바람을 가득 품은채 허공을 차고 오르는 한국여인의 그네뛰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하늘을 향한 문화의 뿌리가 만들어낸 한 절창이리라.
하늘을 향하는 옷맵시는 이렇게 놀이문화에까지 그 맥이 닿아있다.
일본과는 달리 우리문화의 큰 기둥에는 이처럼 하늘로 향하는 비상의 흩날림이 있다. 오랜 농경사회의 틀속에서 혈연중심의 얼개를 이루며 살아오면서도 그 문화의 근간에는 하늘을 향한 의지가,그 염원이 있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옷에는 이러한 흩날림이 없다. 몸에 조여입은 옷에는 곡선이 없다.
모든 끝은 땅으로,땅으로 향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자유와 비상이 없다.
하체의 자유를 강조해 풍성하게 퍼져 내려간 우리의 치마선과 비교할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치마저고리가 자유와 넉넉함이라면 기모노가 보여주는 것은 금제와 긴장감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날아오르려고 하는 문화와 땅으로 땅으로 가라앉혀 가는 이 문화의 차이는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일본인의 근면절약하는 습성이 땅을 향한 문화,실용주의적 발상에 기인한다면 명분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알아온 우리의 심상은 하늘을 향한 비상의 문화가 길러낸 한 고결함은 아닐까.
우리가 일본인과 만나 명분에 집착하다가 실리를 놓치는 일이 있다면,어쩌랴. 그 죄과의 얼마쯤은 우리의 덩실거리는 춤이나 흩날리는 옷고름에도 있는 것을.
다도와 꽃꽃이는 일본여성이라면 누구나 몸에 익히는 교양의 하나다. 청바지차림의 멀쩡한 처녀가 어느날 다도를 배우러 나서는 것을 바라볼때의 당황스러움은 그래도 겪여낼만 하다.
대학졸업을 앞둔 여대생 요시미즈양이 어느날 말하지 않는가.
『저 요즈음 기모노학원에 다녀요.』
기모노학원이라고 해 옷을 만드는 무슨 양재학원이 아니다. 일본 여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옷입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고 해 의아해 할 일은 아니다.
땅을 향한 옷,기본적으로 몸에 붙여 조여입는 옷이기에 기모노는 누구의 도움없이는 입을 수 없게,그 입는 방법이 「배워야 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인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한다. 일본의 저땅을 향한 의지와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흩날려 떠오르는 한복의 아름다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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