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공약 '대운하'를 왜 정부가 검증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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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서 "(TF팀의) 중간보고서가 청와대에 보고되고 공유된 걸로 안다"며 "보고서 내용 중 일부가 2일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포럼 연설문에 참고가 됐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대운하도 민자(民資)로 한다고 하는데 어디 제정신 가진 사람이 투자하겠느냐" "(정부 계산대로) 17조원이든, (이 전 시장 측 주장인) 14조원이든 재정투자를 하면 재정이 큰일난다"고 말했었다.

천 대변인은 "자칫 국토와 국민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상황에서 관련 기관들이 과거(1998년)에 연구한 걸 찾아내 현실에 맞게 다듬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며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연관성을 부인했다. 수자원공사 등 산하기관의 자발적 연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건설교통부 황해성 기반시설본부장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를 두고 정부 차원에서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며 "5월 초 요약본을 이용섭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조사 지시를 내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①수자원공사 자체 판단인가=건교부는 4일 공식 해명자료에서 "수자원공사에서 국토연구원.건설기술연구원과 함께 TF팀을 구성해 98년 조사 내용에 대해 실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형구 홍보관리관은 "산하기관들은 필요할 때 통상 TF팀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도 같은 취지의 해명을 했다. 수자원공사의 주도였다는 얘기다. 건교부는 그러나 왜 수자원공사가 아닌 건교부가 해명자료를 내야 했는지에 대해선 답을 흐렸다.

이 전 시장 측 박승환 의원은 "수자원공사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 대운하에 대해 조사하지도, 할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며 "윗선 때문에 개입하게 된 게 아니냐"고 따졌다.

②청와대 사전에 알았나=청와대는 대운하 문제가 노 대통령의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천호선 대변인은 "(보고서가)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무관한 건 아니다"라거나 "대통령에게 보고된다는 걸 전제로 했는지 모르나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란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시하거나 지침을 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은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전 시장 측 박형준 대변인은 "청와대가 사실상 직접 주문 생산을 의뢰하고 관계 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한 정치공작용 기획 보고서"라 했고, 박승환 의원은 "야당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정부와 산하기관까지 정권의 홍위병으로 내세우는 정권의 작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③야당 주자 공약, 왜 정부가 검증하나=천호선 대변인은 "(야당 주자의) 공약이 현 정부 정책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며 "대통령의 의견이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판도 적지 않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중립적인 기관에서 하면 몰라도 정부 산하기관이, 그것도 공청회 한 번 안 거치고 일방적인 결론을 내는 것은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공대 주승기 교수는 "타당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립적인 과학자들이 판단할 몫"이라며 "공론화 과정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건 정치 공세처럼 들린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도 "수자원공사는 정부 통제하에 있는 조직"이라며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④그때그때 다른 조사 결과=이 전 시장 쪽에선 TF팀의 보고서 결론이 '편파적'이란 주장도 내놨다. 운하 건설에 100원을 투자했을 때 얼마를 버느냐(비용편익비율)를 놓고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는 "97년의 보고서에선 운항 불가 일수를 90일로 잡아도 98원을 번다고 한 수자원공사가 98년엔 24원, 이번엔 16원을 번다는 결론을 냈다"며 "왜 조사 시점마다 결론이 다르냐"고 꼬집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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