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인재들 한국 탈출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취재팀이 미국 케임브리지시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상징적인 건물인 맥로린 빌딩 앞에서 만난 이 학교 1학년 목세은(20.건축학).백진수(20.건축학).신종우(19.컴퓨터공학.왼쪽부터)씨. 이들은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미국의 유학 경험에 대해 얘기했다.

10.20대 젊은 수재들이 한국을 탈출하고 있다. 한국 교육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서다. 부실한 한국 고교.대학교육이 그들을 미국의 명문대로 떠밀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미국 하버드.예일.프린스턴.컬럼비아.매사추세츠공대(MIT).스탠퍼드.UC 버클리 등 동.서부의 명문대를 방문해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났다. 현장에서 인터뷰한 유학생 35명이 얘기하는 '한국 탈출'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이들은 ▶획일적이고 양 위주인 교육 풍토가 싫다 ▶한국 대학은 창의성과 리더십 등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다 ▶세계 일류가 되려는 꿈을 실현하는 데 한국 대학은 한계가 있어 미국을 택했다고 말했다.

MIT의 1학년 백진수(20)씨는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달달 외우는 고교 교육이 싫었고 대학 교육도 더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적한 한국교육의 문제점은 국가경쟁력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일 호암상 시상식장에서 "인재를 천재로 키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며 한국 교육이 '샌드위치 코리아'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육이 획일적"이라며 "교육도 21세기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79)도 3일 서울에서 초.중.고생 대표 100여 명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세계를 이끌려면 현재 교육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취재팀 확인 결과 이런 이유로 한국을 떠나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서 세계적인 영재들과 경쟁하는 한국인 유학생(대학원생 포함)은 약 2000명으로 집계됐다. MIT와 미국 서부의 스탠퍼드.UC 버클리 등 명문대 3곳을 포함하면 3200명이 넘었다. 올해 서울대 학부 입학생(3100여 명)보다 많은 수다. 미국 명문대에서의 한국 유학생 비중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대원외고.민족사관고.서울과학고.한국과학영재교 등 4개 고교에서만 올해 이들 11개 명문대에 80여 명을 보냈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올해 35명의 한국 학생을 뽑았다. 중국을 제치고 처음으로 유학생 수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다른 명문대에서도 한국은 유학생 수 면에서 1~3위권에 속했다.

이들 명문대 한국 유학생들은 모두 미국 교육에 만족하고 있었다. "와서 보니 역시 떠나길 잘했다"는 것이다.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 '디베이터(Debator.토론가)'로 통하는 예일대 2학년 박지호(20)씨는 "수요일마다 버락 오바마(민주당 대선후보), 조지 부시(전 미 대통령) 등 유명 인사를 초청해 토론을 벌인다"며 "한국에서 대학에 다녔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석사과정 윤치형(24)씨는 "강의실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나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등의 특강을 수시로 들을 수 있고 방학 때는 실리콘밸리 정보통신 업체의 연구에 참여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리처드 쇼 스탠퍼드대 입학처장은 "한국 학생들의 경쟁력은 이미 확인됐다"며 "우수한 한국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입학 기회를 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 이상언.임장혁.박수련 기자

◆아이비리그(ivy league)=미국 동부 지역의 8개 명문 사립대학을 일컫는 말이다. 하버드(Harvard).예일(Yale).프린스턴(Princeton).브라운(Brown).컬럼비아(Columbia).코넬(Cornell).다트머스(Dartmouth).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대학이 속한다. 1954년 8개 대학 스포츠 리그 연합체가 결성된 것을 계기로 이들 대학에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건물이 많아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