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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암살」 진상과 증언번복/김정배 전국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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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주 세간의 이목을 모은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75) 피랍사건과 안씨의 「역사적 증언」,그리고 하루만의 전면 번복,권중희씨(56·민족정기구현회장) 구속수감 등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얼름같이 찬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경구를 되새기게 됐다.
권씨 일행에 납치된 안씨는 다음날 권씨와 함께 서울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통해 『암살 6일전 경무대로 불려가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저격을 암시하는 말을 들었다』는 요지의 증언을 했다.
증언이 진실이라면 이는 그동안 미궁에 빠졌있던 역사의 의혹을 푸는데 결정적 단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씨는 그동안 몇차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강요된 증언을 했다가 나중에 전면 번복한 전력이 있었다.
그 바람에 언론의 입장에서는 고의가 아니면서도 「사자의 명예」 훼손을 범한 결과로 끝난 사례가 많았다. 결국 이번에도 안씨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증언을 전면 번복하는 전례를 되풀이했다.
몇차례의 선례와 심증에 비추어 보도에 신중을 기하고 안씨 증언을 다루지 않았던 중앙일보는 결과적으로 오보를 면했다.
그렇지만 권씨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상황전개를 보면서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한 개인이 비록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떠나 민족적 공분의 발로로 8년여에 걸쳐 진상규명을 위해 쏟은 「집요한」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목적과 필요에 따라 린치를 가해서라도 증언을 얻어내겠다면 과연 그 결과가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강압이나 다른 목적에 의해 왜곡된 증언이 역사의 진실규명을 더 어렵게 하고 엉뚱한 사람들에게까지 누를 끼친다면 또다른 범죄가 될 수도 있다.
백범 암살사건같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얼음같이 찬 머리」로 실증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진실찾기에 지극히 미온적이었던 정부를 비롯,여야정당·사학자·정치학자·연구기관·사회단체 등이 고루 망라된 기구를 조직,진실규명작업을 펴야 한다.
인생의 황혼길을 맞은 안씨도 자신이 민족과 역사앞에 정녕 뉘우친다면 이제는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증언」과 「증언번복」을 거듭,세치 혀로 언론과 국민을 현혹케하고 놀아나게 해서는 결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냉철하게 깨우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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