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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수산이 본 이모저모(이웃사람 일본인: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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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숟가락 안쓰는 식사문화/그릇모양·도예형태까지 영향/국물은 후룩후룩 마셔… 놓고 먹는 우리와 대조
작가 한수산씨의 「이웃사람 일본인」을 연재합니다. 주2회 연재될 이 시리즈에서 한씨가 4년여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인들의 모습을 이모저모로 관찰한 글을 싣게 됩니다. 70∼80년대 화려한 문체와 감성,그리고 따스한 비판적 눈길로 독자를 사로잡았던 한씨는 88년 여름,문학적 상상력의 재충전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한씨는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속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고,한편으로 일본인의 문화적 뿌리를 찾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극일이나 일본을 배우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들을 좀더 친밀히 알려는 시각에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겠다』는 한씨의 말처럼 「이웃사람 일본인」은 전문가들에 의해 많이 쓰여지고 있는 「일본론」「일본문화론」 등 거창하고 어려운 「론」이 아닙니다. 일본인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는 한씨의 작가적 내면에 비친 그들의 자잘한 구석을 산책하듯 읽다보면 일본인의 실체가 만져지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편집자주>
「돈부리」라고 하는 일본 덮밥은 장어에서부터 쇠고기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오야코」라는 것도 있다. 「아비와 자식」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아비인 닭고기와 자식인 달걀을 섞어 만든 것을 밥위에 덮어준다(음식이름 치고는 참…).
이 음식을 먹고 있는 일본인을 보고 있자면 「저렇게 급할까」싶고 「원 체신없이도 먹네」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뚝배기 크기의 그릇을 들고는 젓가락으로 밥을 입에 긁어넣으며 먹어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체신없음도,배가 고파서도 아니다. 숟가락이 없는 나라,일본 음식문화의 하나일 뿐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국민학생 아들녀석은 법먹는 버릇이 아주 야만적이었다. 그릇을 들고 입에 긁어넣다시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부모를 따라 일본땅에서 몇년을 살아야 했던 문화적 충격(?)이 겹쳐 있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해 가는 힘에 있어 아이들은 풀이 자라는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니다 일본에 가게된 아들녀석이 어느날 갑자기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주위사람들이 모두 밥그릇을 들고 먹는,일본이라는 환경이 가르친 일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들었듯이,어른이 되어 자식을 둔후에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면 언제나 말하곤 했다. 『제대로 놓고 먹어라­.』
밥상머리에서의 교육은 그렇게 놓고 먹으라는 것이 시작이었다. 이때의 「제대로」는 바르게 앉으라는 뜻이었고,밥그릇을 놓고 먹는 것은 올바른 젓가락질과 함께 먹는 일의 기본이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받는 밥상머리의 예절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밥그릇을 들고 먹으면 늘 들었던 말이 있다.
『거지냐! 밥그릇을 들고 먹게.』 그러나 일본인은 밥공기를 를고 먹는다. 「미소시루」라고 하는 된장국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한국형으로 변형되어 한국의 일식집에서는 친절하게 숟가락을 놓아주어 떠먹도록 하지만,미소시루는 들고 후룩후룩 마시는 음식이다. 밥공기를 들고 젓가락질을 하고 입에 대고 마시는 것이 일본음식과 만나는 올바른 예절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혹시 밥공기를 놓고 먹으면 부모들이 아이를 꾸짖는 말이 있다.
『개냐! 놓고 먹게­.』
놓고 먹는 나라 한국에서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것은 것은 거지나 하는 일이라면,들고 먹는 나라 일본에서 놓고 먹는 것은 개나 하는 짓인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개가 아니며,거지일리 없다. 두 나라의 환경과 습성이 만들어낸 음식문화의 하나일 뿐이다. 식탁에서 입까지의 그 짧은 거리에서도 두나라에는 이처럼 드넓은 또다른 거리가 있다.
놓고 먹는 민족과 들고 먹는 민족의 이 음식문화의 차이는 단순하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식기의 형태와 문양을 판이하게 구별짓게 한다.
우리의 그릇은 두텁고 크고 무겁다. 놓고먹기 때문이다. 놓고먹자니 쓰러지지 않게 두툼하고 무거워야 한다. 여기에서 한국 전통식기가 가지는 풍성한 양감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백자 반상기를 보고 있자면 놓고 먹는 문화,숟가락으로 떠먹는 식문화가 만드러낸 절품으로 느껴진다. 단순의 극을 이루는 희디 흰 색채와 각이 없이 둥글둥글한 선으로 이루어진 그릇들이다. 초가지붕의 그 완만한 선과도 또한 그렇게 닮아 있을 수 없는 반면에 일본은 들고 먹어야 하므로,그릇이 가볍고 적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다 입술에 대고 마시거나 긁어넣기 때문에 그릇의 두께가 얇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들고 먹자면 그 그릇을 매만지며 들여다보게 마련이다. 일본의 식기가 우리의 것보다 문양이 많고 컬러풀한 이유도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두나라의 식문화의 차이는 이렇게 도예의 형태에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밥그릇을 꼭 놓고먹으라는 아비의 말과 들고 먹기 편하게 되어 있는 일본그릇 사이에서 어린 아들이 궁여지책으로 짜낸 지혜가 있었다. 밥공기를 상위에 놓고는 거기 입을 대고 긁어 넣으며 먹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자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한일 두 문화의 절묘한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최악의 경우이긴 했지만. 그러나 문득 디오게네스의 말이 떠오른다.
「부자라면 기쁠때 먹도록 하여라. 네가 가난하다면 먹을 수 있을 때 먹도록 하여라」­.
들고 먹든 놓고 먹든,일본인도 한국인도 먹을 수 있을때,그리고 기쁠때 먹을 일이다. 가깝지만 이토록 먼,그들이 이웃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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