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렉트 콜 사기 10만 명이 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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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등학생 김모(16)군은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이 30만원 넘게 나왔다. 4월 초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알게 된 '중국 상하이에 있는 유학생'이라는 여성과 국제전화를 한 게 화근이었다.

"곧 한국에 돌아가는데 친구를 구한다"는 그 여성은 김군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곧바로 '002-00-0086…'이란 발신자 번호가 찍힌 전화가 걸려왔다. "요금은 수신자부담"이란 안내가 있었지만 상대방은 "메시지만 그렇고, 실제로는 내가 돈을 낸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는 분당 2000원이 부과되는 수신자부담 국제전화(콜렉트 콜)였다.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접속한 남성들을 상대로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걸어 전화요금을 내게 하는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이러한 수법에 걸려든 피해자는 무려 10만 명 이상이다.

◆콜렉트 콜로 수수료 챙겨=사기 유형은 대체로 비슷하다. 중국이나 태국.필리핀 유학생이라고 밝힌 여성들이 국내 유명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남성 회원들에게 자신이라며 미모의 사진을 보여준 뒤 "한국에 갈 테니 사귀자"고 유혹한다. 채팅 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뒤 수신자부담 전화를 거는 것이다. "요금은 내가 낸다" "인터넷 전화여서 요금이 싸다"는 말로 안심시킨다.

전화 중간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거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서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도 수법이다. 자신의 전화번호라며 '010' 또는 '0504'로 시작하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 역시 발신자에게 분당 1500원의 요금이 부과되는 로밍서비스를 이용한 사기다.

◆중국.필리핀.태국.베트남에서 사기 행각=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3일 중국동포 여성 등을 고용해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남성 회원들을 유혹한 뒤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걸어 수수료를 챙긴 사기 조직 네 개를 적발했다. 이 중 박모(47)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김모(33)씨 등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현지 동포 여성 수십 명을 고용해 한국 남성과 전화를 하게 했다. 불구속 입건된 김씨 등은 2005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인터넷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할 여성'을 모집한 뒤 여성 14명을 필리핀.태국.베트남 등으로 데려가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들 조직은 채팅 남성 10만여 명으로부터 55억3000만원의 통화요금을 내도록 해 이 중 수수료 24억2000만원을 챙겼다. 적발된 사기 조직 가운데 2곳은 중국에, 1곳은 필리핀에, 나머지 1곳은 태국.베트남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경찰은 사기 조직과 '수신자부담 국제전화서비스 계약'을 체결한 국내 기간통신업체인 L사의 국제전화사업부 영업부장 김모(48)씨 등도 사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피해 민원 수백 건이 빗발쳤는데도 회사 수익을 위해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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