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캬, 토론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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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맨쇼'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강에 참석해 회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강연을 "장장 4시간 동안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원맨쇼"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청와대에서 매일 매일 언론에 얻어맞고 한나라당이 한마디 하면 (언론의) 톱으로 또 얻어맞다가 오늘 저 혼자 아무도 안 말리는 데서 일방적으로 해보니까 참 기분 좋네요."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오후 3시10분부터 네 시간 동안 계속된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인의 표현대로 이날 강연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거의 모든 반대 세력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원 없이 한 자리였다.

노 대통령이 강연장인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강당에 입장할 때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900여 명의 지지자는 기립박수를 보내며 '노무현'을 연호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2002년 대선 때처럼 노란 손수건을 흔들기도 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노 대통령은 "며칠 동안 쓰고 어젯밤 12시까지 쓰고 조금 전까지 썼다. 써놓고 조금 눈을 붙여 봤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며 두툼한 노트를 꺼내 놓고 말문을 열었다. 강연 도중 객석에선 100여 차례의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노 대통령이 "박수를 자꾸 치면 시간이 자꾸 가 초조해진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자화자찬'이란 용어를 써 가며 경제.안보 등 거의 모든 국정운영에서 잘못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는 가장 시비가 많은 분야인데, 올라갈 것은 다 올라가고 내려가야 할 것은 다 내려가고 있다"며 "국민소득이 3만 달러, 4만 달러가 되면 그것은 참여정부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지칭해선 '혁신 대통령' '과장급 대통령,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대통령' '20~30년 묵은 과제를 해결한 설거지 대통령'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등 한나라당 대선 주자군을 비판한 대목에선 특유의 농도 짙은 발언을 구사했다. 그는 "토론이 본격화하면 밑천이 드러날 것"이라고 양 주자의 대선 공약을 비판한 뒤 "캬, 조기숙 교수님 토론 한번 하고 싶죠? 캬, 저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헌법에 토론을 못하게 돼 있으니 단념해야지요"라고 했다. 이어 "참여정부 정책 중 폐기해도 좋은 정책이 별로 없을 것"이라며 "자꾸 없는 것을 새로 찾으려 하지 말고 책 많이 써 놓았으니 그냥 베껴 가라"고 비아냥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를 죽사발을 만들었다" "뻑 하면 비상 거는 거 왜 안 하냐고 국회에서도 떠들었다"고 하는 등 비속어를 많이 썼다. 저녁식사를 위해 1부 연설을 마치면서 그는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 한 가지가 있는데,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말을 고상하게 다듬어서 하는 재주를 준비하지 못했다"며 "한 번 더 시켜 주면 확실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강연을 마치고 청중들의 박수 속에 퇴장하던 노 대통령은 객석에서 울려퍼지던 민중가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따라 불렀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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