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총영사 "우호증진" 민간외교 징검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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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엔 가입과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본격적인 전방위외교가 실현되면서 민간외교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이 민간외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명예총영사다.
명예영사는 직업외교관은 아니지만 해당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사활동을 하게 돼 있다.
주한명예영사중에는 그 나라의 공관이 서울에 있어 그야말로 명예직만 갖고 양국간 우호관계 증진을 위한 대사의 자문역 정도에 머무르는 경우와 비자발급·교민보호 등 직접 행정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명예영사가 맡아 하는 일에는 통상 입국사증 발급 및 원산지 증명, 영사공증 확인등 양국 경제교류를 위해 필수적인 일들이다.
특히 아프리카 대부분을 비롯해 일부 태평양·남미국가들은 한국에 공관을 설치할 정도의 재정사정이 되지않아 한국인 명예영사에게 영사업무를 의존하고 있는데 이들이 없을 경우 제3국으로 가서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문화교류도 한몫>
이 명예영사들은 해당국의 고위인사가 오면 안내나 통역을 맡아 하기도 하고 한국에 관한 소개 정보도 제공한다. 또 그 나라의 관광안내 책자등을 국내에 배포하거나 그 나라와의 문화교류등에 가교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이 해당국가와 교역등을 할 때는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기업인인 것은 시간과 경제적 여유외에도 이러힌 반대급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먼저 그 나라와 교역관계에 있을 경우 국민학교 「육성회장」선발하듯 떠맡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명예영사로 임명되려면 대사의 추천에 의해 임명국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고 이를 주재국 외무부에 제출, 인가장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교역등으로 임명국 관리들과의 교분이 있거나 서울주재대사와의 친분으로 임명되는 경우, 임명국의 요청으로 한국외무부가 알선을 하는 경우 등이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명예영사로 임명된 것은 지난 59년 천우사의 전택보사장으로 80년 세상을 뜰 때까지 주한 덴마크명예영사를 역임했다.
명예영사는 83년까지만 해도 32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현재 88명에 이르고 있다.
서울의 명예영사들은 지난77년부터 주한명예영사단을 구성해 상호간의 친목과 주한외국외교관들과의 친선활동도 벌이고 있다.
현재 지난 71년부터 도미니카명예총영사로 있는 김생기 영진약품회장이 단장을 연임하고 있고, 볼리비아명예총영사인 정문도 벽산개발회장과 감비아 명예총영사인 박우용 신세대제약사장이 부단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매월 미8군내 대사클럽에서 열리는 서울주재영사 모임에 함께 참석해 친교를 다지고, 가끔 외국대사들을 초청해 골프장에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이량 청와대외교비서관의 장인으로 상공부에 근무했던 기단장은 외무부간부들과도 친분이 있어 지난 71년 도미니카 명예총영사를 맡았다.
명예영사는 대개 현지인을 임명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아이젠버그영사, 마가레드융커영사, 덴마크의 올레 렌버그영사, 독일의 쿠르트 칼 슈미트케영사, 스페인의 다니엘 몬탈트영사등 5명은 자국민으로 임명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명예영사는 임명국에서 기업인 이상의 예우를 받을 수 있는 등의 이점도 있어 대부분이 기업인이다. 그래서인지 명예영사단에는 웬만한 재벌들이 다 끼여있다.
그룹별 명예영사로서 가장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있는 것은 한국화약의 김승연회장. 김회장의 선친 고김종희회장 시절인 67년 그리스외무부 장학금으로 아테네대학에 유학한 김창식씨가 공관이 없던 그리스의 명예영사 일을 하자 그를 한국화약직원으로 등록시켜 지원을 했다.

<김승연씨 적극적>
김전회장은 별도의 사무실을 내주고 여비서까지 붙여 김씨가 영사업무만 전담토록 배려했다. 이에따라 73년 그리스측은 김전회장을 명예총영사, 김씨를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그 뒤 김승연회장이 명예총영사직을 승계했고, 김영사는 현재 한국화약의 중역대우를 받고 있으나 계속 영사업무만 맡고 있다. 91년 그리스대사관이 생겼으나 영사관을 대사관 안으로 옮겼을뿐 아직 김영사와 여비서가 영사업무를 맡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부산에서 영사관을 운영하며 사무실과 인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왕상은 협성해운회장이다. 현재 이사급의 곽희우 부영사가 영국인 한명과 함께 영사사무실에서 영사업무만 보고있는데 50여개의 영연방과 관련된 업무까지 맡고 있어 다른 영사보다는 휠씬 업무가 많다고 한다.
그룹별로 명예영사가 가장 많은 곳은 대우로 김우중회장(수단)을 비롯해 김덕중고문(네팔), 이경훈대우공업사장(중앙아프리카), 서정석㈜대우사장(가나), 윤영석㈜대우사장(우간다), 장영수㈜대우사장(지부티)등 6명.
대우는 그룹 기획실 의전부내에 1명의 전담자를 비치해 회사업무와 함께 수시로 영사업무를 맡도록 하고 있다. 수단은 지난90년11월 서울에 공관을 설치했으나 나머지 5개국은 아직 공관이 없어 비자발급·교민보호·영사공증등 영사업무를 해주고 있다.
김회장은 대우가 설립된 직후인 67년3월 수교도 되지 않은 수단과의 교역을 위해 드나들다 명예영사로 임명됐다. 한국과 수단과의 수교는 77년4월에 이루어졌으니 거의 10년간 미수교국의 영사활동을 대행한 셈이다.
럭키·금성도 구평회 럭키금성상사회장(페루)과 구자원 럭키개발부회장(우루과이명예총영사), 구자훈 럭키화재해상보험전무(우루과이명예영사), 천신환 럭키금성사장(칠레), 구자학 금성일렉트론회장(터키)등 5명. 여기에 구자두 희성산업회장까지 포함하면 6명에 이른다.

<2개국 영사겸직>
정인영한라그룹회장의 경우에는 키리바티의 명예총영사와 파푸아뉴기니 명예영사를 함께 겸직해 유일한 복수지역대표 명예영사. 정회장은 53년부터 현대건설사장으로 해외수주여행을 많이 했으며, 이곳도 현대건설의 공사를 인연으로 정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하게 된 것이라고 한라측의 한 중역이 밝혔다.
기업인들만으로 구성된 명예총영사단에서 비기업인 몇사람이 눈에 띄고있다. 그중 특히 이질적인 것이 자메이카의 명예총영사와 명예영사를 각각 맡고 있는 이종욱 수원대총장과 곽영직물리학과교수.
이총장은 자메이카초대대사를 지낸 최운상 전대사가 국회의원이 되기전 수원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시절 최전대사의 권고로 87년 맡게됐다.
이밖에 현역 의원인 이명박(부탄), 이상득(세네갈) 명예총영사들이 있으나 모두 기업인으로 있을 때 임명된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의원은 현대건설이 아시아개발은행 차관으로 부탄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인 인연으로 86년 10월 명예총영사로 임명됐으나 이제 거의 활동이 없는 상태다.
형제가 나란히 벨리즈의 명예총영사와 명예영사로 임명된 서민석 동일방직회장과 서준석 우영인터내셔널사장은 미국과의 우회무역 거점으로 수교직전 외무부의 추천에 의해 방문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 그러나 85년 이후 12명이 명예영사직을 내놓을 정도로 귀찮은 측면도 있다.
한편 한국도 외국에 명예영사 56명을 임명해 놓고 있다. 한국이 명예영사를 임명한 것은 지난 66년부터 외교망 확대의 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임명된 사람이 스위스의 알버트 마이어씨등 9명.
현재 일본 가고시마의 한국계 도공인 심수관명예총영사등 외국인으로 임명하고 있는데 모리셔스에는 대통령 영식인 세야브씨가 한국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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