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해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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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책부재>

<무책임한 공약에 불심만 쌓여>
지난 89년 이른바「총체적 위기」에 대응한 경기부양시책과 90년부터의 안정화시책, 행정규제 철폐및 자율화를 내세우면서 실시된 5·8 부동산규제조치 등 일관성 없는 정책이 국민과 기업의 합리적 판단과 장기적인 사업추진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나라 안팎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제2이동통신사업도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적 논리보다 정치적 논리를 앞세운 정치권은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고, 정부는 이의 눈치를 보느라 조령모개식의 정책을 불사하고 있다. 이래선 각 경제주체들간 불신의 벽만 높아지고 응집된 힘을 발휘한다거나 장기적 안목에서의 투자전략을 마련할 수 없다 재벌의 문어발식 투자형태에 대해 비판이 많지만 그 원인을 따져보면 정부 정책이 하도 오락가락해 허용될 때 들어가 놓고 보자는 식의 한국식 사업참여 결정이 관행화 됐기 때문이란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민주화」라는 변화는 인정한다해도 6공들어 정부가 3공 때의 성장, 또는 5공 때의 안정 같은 뚜렷한 목표를 선택하지 못하고 정치적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밀려다니다 보니 정부 경제정책에서 일관성 있는 목표와 방향을 알 수 없게 됐다는 비판이 많다.

<한탕주의>

<노력 않고 쉽게 돈 벌기 급급>
노력하지 않고 치부하려는 사고방식이 사회전반에 만연되고 있다.
이권을 둘러싼 뇌물수수와 그 틈새를 파고 횡행하는 각종 경제사기사건, 주기적으로 불어닥치는 부동산·주식시장의 열풍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이른바 3D현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대부분 한탕주의·불로소득, 이와는 뗄수 없는 부패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기업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기술개발투자 등을 통해 기업을 내실화 하려하기보다 낮은 이자의 제도금융을 어떻게 더 끌어다 부동산투기 등을 통해 단기이윤을 올릴까에 골몰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부동산·증권·예술품등 돈이 될 만한 것이면 어디든지 몰려다니며 한탕을 노리고 남보다 한 걸음 앞서 정보 이권에 줄을 대기 위해 뇌물이 뒤따른다.
이에 따라 부동산값은 국민경제의 상승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 사회간접자본·공장용지등 생산시설의 확대에 결정적인 제약이 되고 있으며 쉽게 돈을 번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제조업에 외면한 채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결국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과 정상적인 근로활동으로는 지위향상의 기회가 없음을 절감하고 근로의욕을 잃고 저축보다 자포자기적 소비로 빠진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겠다는 발상은 성실한 사회의 종말과도 다름없습니다. 불로소득은 철저히 봉쇄되어야 하며 성실하지 않은 자는 굶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박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한 중소기업인의 말이다.

<탁상공론>

<현장 모른 채 각종규제만 남발>
?히 대접받고 섣부른 이론으로 일만 그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 많다. 알지도 못하면서「감 놔라 배 놔가」간섭을 하고 현장에서 보면 별 도움도 안 되는 정책을 대단한 것 인양 포장해 내놓는다.
중소기업인들은 정부가 중소기업정책을 논의하면서, 예컨대 수도권주변의 무 등록공장 등에 실제로 얼마나 가봤을지 의문시하고 있으며 지원정책이라고 내놔봐야 현실적으로는 이뤄지지도 않는 상업어음할인확대나 큰 효과도 기대기 어려운 법인세 감면등 인기위주의 시책이 되게 마련이라도 보고 있다.
기업내부에서도 전문적 판단을 요하는 일조차 오너의 한마디 즉흥적 지시만으로 이뤄져 자금과 시간의 낭비만 초래하는 일이 많다. 첨단산업을 육성한다 하면서 자격규정은 왜 그리 많은지, 수출입업무에 거쳐야할 곳은 또 왜 그리 복잡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 심지어 공해로 골치를 앓고 있는 중고타이어를 수출하는데도 협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식의「도장찍은 기관과 협회」는 왜 두어야하는지 답답해하고 있다. 9월 개정 이전의 외 국환 관리 규정, 건축관계 및 요식업소 허가규정, 공장, 목장, 양돈장등의 설치규정등 주구도 지킬수 없거나 현실성이 없는 행정규제들이 모두를 위법자로 만들고 경제의 효율성만 떨어뜨리는 현실에 대해 「국민은 규제돼야 한다는 식민지 통치방식」의 잔재로 통박하는 지적도 있다.

<허례허식>

<과시욕 높아 과소비 부추겨>
기업이 조금만 크면 회장직함을 가져야 행세가 되고 혼자 쓰는 사무실은 운동장만큼 넓다. 사업상 접대는 일인당 수십만원씩 하는 요정이나 룸살롱에서 해야되고 승용차구입은 필요보다는 체면에 따라 차종이 결정된다.
월소득 1백만원에 못 미치는 월급쟁이가 호텔 코피숍에서 한잔에 1만원 가까이하는 음료를 놓고 맞선보기를 당연시하고 기업에선 내용물 값과 맞먹는 포장비용을 들인 선물세트를 내놓으며 소비자들은 품질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해외 유명상표가 붙은 것이라야 손길이 간다.
주머니 사정상 무리인줄 알면서도 「남들이 하니까」경조사의 부조봉투에 넣는 돈은 늘게되고 1주일 고생할 줄 알면서도 함께 먹은 음식값을 혼자 치르고 있다.
이처럼 각 소득계층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허례허식과 과소비는 결국 우리 경제에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적당주의>

<하는 일 정성 안 들여>
『예전에는 정성을 들여 물건을 만들고 또 자신이 만든 물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적당히 만들어 선적하면 끝이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물건을 시간 바이어들이 자기나라 시장에서 다른 물건을 수입해온 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실패해 다시는 우리에게 주문은 주지 않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국민 모두의 정직성·신뢰성을 회복하는 운동이 절실하며 제품생산에 성의가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우리경제를 망치고 있는 것들로는 잘못된 것은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는 풍조,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한다는 천민자본주의, 봐주기 인사와 같은 집단이기주의, 언론을 비롯한 여론주도층의 일관성·논리 없는 여론선도형태, 실제 능력보다는 밥 그릇수·학력으로 따지는 그릇된 평가기준, 우물 안 개구리식의 결여된 국제감각 등이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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