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할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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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06면

남편 고 박정규씨가 묻힌 강원도 홍천을 찾은 정혜순씨. 남편은 길고 곱게 뻗은 낙엽송이 되어 아내를 맞았다. 정혜순씨가 나무가 된 남편을 안고 있다.

아내가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당신은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아름다운 이별

당신을 보러 홍천에 갔어요. 길고 곧게 뻗은 낙엽송. 멀리서도 확 눈에 띄는 모습에 함께 갔던 당신 친구가 “정규랑 꼭 닮은 나무”라고 하셨죠. 가까이서 돌봐주시는 당신 사촌 형님도 “나무가 너무 곧고 멋있어. 우리 집 거실에서 정면으로 보여서 생각이 많이 나”라며 고개를 떨구셨죠. 처음에 당신이 “수목장으로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셨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어요. 하긴 한참 아플 때 병원에서 나가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 물었더니 당신은 숲으로 나가 나무를 끌어안고 싶다고 하셨죠. 당신이 떠나던 마지막 순간, 우리 약속했잖아요. 당신이 나무가 되면 나는 그곳으로 소풍갈 거라고. 바람이 살랑 불어오면 당신도 그곳에 같이 있다는 표시인 줄 알라고.
막상 회색빛 재가 된 당신을 받아들었을 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울고 또 울었어요. 더 사랑할 걸, 더 껴안을 걸 하고. 이제는 나, 많이 씩씩해졌어요. 머리도 새로 하고 옷도 화사하게 입고 이렇게 찾아왔잖아요. 당신 늘 돈 많이 벌면 어려운 아이들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서 당신 보험금 3000만원으로 시골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고 있어요. 친구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와달라고 청했어요. 아무래도 3000만원은 금방 바닥이 날 테니까, 다들 조금씩 모아 함께 도우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한명 두명씩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생겨 매달 1만원을 보내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제천고 학생 3명이 월 30만원의 ‘박정규 장학금’을 받고 있답니다. 멋지지 않아요?
나 언니를 따라 홍콩에 가기로 했어요. 그곳에서 중국어도 배우고 이것저것 새롭게 일을 해보려고요. 걱정스럽다고요? 임종하던 날 아침에도 당신은 할 말이 있다며 불편한 몸으로 일어나더니 내 걱정을 했죠. 그때 말했잖아요. “자기 위해서 씩씩하게 잘 살게”라고요. 그러니, 이제 걱정마요. 당신이 보고 싶을 땐 이곳으로 돌아와 당신 나무 밑에 앉아 있을게요.

※ 박정규(사망당시 45세)씨는 2005년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홀로 남은 아내 정혜순(41)씨를 위해 수목장을 택했다. 나무로 다시 태어나 아내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싶다 했다. 지난해 4월 나무가 됐다.

한 가장의 生前 독백
“준비된 이별 할 수 있어 너무 행복”

지난해 4월 치료를 위해 아내와 함께 서울대병원을 찾은 고 장수광씨(右).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던 날 모처럼 아내 김명애씨와 함께 기념사진 한 장을 찍었다. 사진 변선구 기자

나는 내가 죽음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어. 성당에서 13년 동안 연령회장을 맡아왔었거든. 신자들 장례를 무료로 치러주는 모임인데, 직접 시신을 씻기고 염하고 입관한 적이 50~60번은 넘었지. 처음에는 긴장됐어. 쉽지 않거든. 한번 갔다오면 몸에서 냄새도 나고 겁도 났지. 그래도 보람있는 일이니 계속하자 생각했고 점점 익숙해지더라고. 한번은 시신 얼굴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더라고. 많이 고통스러웠나봐. 그래서 다들 가까이 가길 꺼려하는데 내가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줬어.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편안하게 표정이 펴지더라고. 나는 내가 죽음에 초연해진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더라고.
“6개월 남았습니다”하고 병원에서 이제 치료 받으러 오지 말라는데 겁이 덜컥 났어. 진짜 죽는구나. 죽음을 기다릴 바에 자살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우리 어머니 산소에 찾아가 더 살게 해달라고 울며 빌기도 했어. 그러다가 빨리 정신 차려야겠구나 싶었어.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남은 시간을 두려워하느라 다 보낼 수는 없잖아.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영정부터 만들었어. 아파트와 통장을 아내 명의로 돌렸어.
그러고선 내 묏자리를 보러 다녔지. 포천 어머니 묘 근처에 마누라와 함께 들어갈 자리를 샀어. 서글프면서 동시에 마음이 안정되더라고. 이제 할 일 다 했구나. 둘째아들 결혼식(지난해 10월)만 보고 가면 다 처리하는건데, 아무래도 욕심인 것 같아. 난 행복한 사람이야. 살 만큼 살았고 이렇게 준비도 차분히 하고 떠나잖아….

※ 장수광(사망당시 63세)씨는 2001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취재팀과 만난 지난해 3월, 그는 직접 운전을 하고 7개월 된 손자를 돌볼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남짓. 떠날 준비와 남은 이들을 위한 배려를 마친 지난해 8월 22일,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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