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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서도 유색인종 폭행 급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경기침체로 적대감… 작년 런던서만 3천여건
영국에서 최근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종 폭행 등 인종차별적인 범죄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한달새 계속되고 있는 독일 극우세력의 난민테러 등 유럽각국의 외국인 배척 움직임과 함께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달 런던 남부의 한 빈민가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민한 24세 청년이 백인 청소년들에게 뭇매를 맞고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여자친척들을 희롱하려는 백인 깡패들을 저지하려다 이들에게 머리를 쇠몽둥이와 곤봉으로 난타당해 숨졌다. 목격자들은 다시 백인깡패들이 『죽어라 파키』라는 말을 외치며 미친듯이 폭력을 휘둘렀다고 전했다. 『파키』라는 말은 영국인들이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지역에서 이민한 사람들을 경멸하며 부르는 욕설이다.
런던 경시청 통계에 따르면 런던 지역에서만 지난해 일어난 유색인에 대한 박해사건이 3천3백73건에 달해 전년도에 비해 16% 증가했다. 이들중 절반 이상이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었다. 또 한 인권단체 조사는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지방을 뺀 웨일스·일글랜드 지방에서만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 폭행범죄가 지난 88년부터 90년까지 약 30%이상 증가,90년에 6천4백59건에 달한 것으로 보고했다. 두 통계숫자는 영국 전역에서 유색인 폭행에 빠른 속도로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들 통계치는 경찰에 신고한 사건들만 집계한 것이어서 유색인 폭행은 훨씬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인종평등운동 단체가 런던 교외 뉴햄지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폭행을 포함한 인종차별행위중 경찰에 신고되는 것은 20건중에 1건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백인들의 유색인 박해가 일상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백인들의 유색인 박해행위가 늘고 있는 원인으로 이민의 꾸준한 증가와 지속적인 경기침체가 지적된다.
영국 정부자료는 영국내 아시아인과 흑인수는 지난 25년간 1백10만명에서 2백70만명으로 급격히 증가,영국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중 80%는 아시아계로 남아시아지역 출신이 가장 많고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각국과 한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 출신들도 포함된다. 흑인들은 지난 50년대 이민한 중미지역 서인도제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대개 대도시 빈민가에 정착해 알고 있는 유색 이민들에 대한 백인들의 박해는 최근 몇년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가중되고 있다. 영국의 계속된 실업 등 경기침체로 인한 고통을 가장 많이 겪게 되는 백인 하층민들 사이에 유색인 이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적대감이 고조되면서 이같은 유색인 박해가 늘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유색인들은 일종의 「희생양」이 되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백인들의 유색인 폭행을 우발적으로 일으키기도 하지만 조직적인 외국인 박해와 추방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이 세력을 확대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영국 국민당이라는 극우단체가 최근 빈민가에서 「백인들의 권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유색인 또는 외국인에 대한 박해는 지금 독일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도 이런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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