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공계 내년부터 '우열반' 편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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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공계 신입생은 내년부터 수학.과학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치러 성적에 따라 고급.일반.기초 과목 수강생으로 편성되는 사실상의 '우열반'교육을 받는다. 서울대는 31일 "이공계의 수준별 학습 등 기초과학 교과 교육 개선안을 마련해 2008학년도부터 시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개선안에 따르면 이공계 신입생에게는 수학에 국한돼 온 입학 전 평가시험이 물리.생물.화학 등 기초과학으로 확대된다. 수학의 경우 수시와 정시 모집으로 구분해 각각 평가시험을, 다른 과목은 정시모집 이후 한꺼번에 평가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어 과목별 성적에 따라 고급.일반.기초과목 등 세 단계의 수강생으로 나뉘어 차등화된 강의를 듣는다.

'과학 영재교육'은 강화된다. 평가시험에서 과목별로 실력이 입증된 학생 20여 명에 대해서는 최대 14학점(수학 6학점, 과학 8학점)까지 기초과목 수강을 면제해 준다. 대신 학생이 직접 강의를 설계하는 학생 주도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다른 분야 교양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3학년부터는 지도교수단의 관리 아래 논문을 쓰는 등 특별관리를 받는다.

◆부실한 고교 교육이 원인=서울대는 올 3월 이공계 '물리 심화반' 신청자 243명을 대상으로 물리학 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100점 만점에 75점 이상을 받은 39명만 통과했다. 과학고(영재고 포함) 출신이 37명, 일반고 출신이 2명이었다.

과학고 출신 학생은 91명이 지원해 37명(40.7%)이 합격한 반면 일반고 출신 학생은 141명이 지원해 2명이 통과해 1.4%의 합격률에 그쳤다.

물리천문학부 관계자는 "과학고 출신은 평균 70점대인 반면 일반고 출신은 30점대에 그쳤고, 심지어 0점도 수두룩했다"고 전했다.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들의 수학.과학 학력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3단계 우열반 교육을 실시하게 된 배경이다. 수능 수리영역이 쉬워져 고급수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졌고, 과학탐구영역에서도 일부 과목만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역 균형 선발, 특기자 전형 등 선발 기준이 다양해진 것도 실력차의 한 원인이다.

김도한(대한수학회장) 교수는 "고교 교육과정을 쉽게 바꾼 책임을 대학이 지고 있다"며 "정부가 본고사를 금지하고, 논술에서 수학계산형 문제 출제 금지 등을 일일이 규제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대 김도연 학장은 "쉬운 수능으로 '미적분도 못하는 공대생' '물리Ⅱ도 안 배운 물리학과생'이 나온다"고 말했다.

권근영.최선욱 기자

오세정 자연대 학장

"지나친 평등주의와 과학과목 선택제가 고교 교육을 망쳐놨다."

서울대 오세정(사진) 자연대 학장은 31일 이공계 신입생들에게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고교에서 기초적인 수학.과학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기본적인 소양이 턱없이 부족한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공계 신입생들의 학력차가 얼마나 심각한가.

"수학시험을 보면 하위 20%는 고교 과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고교에서 물리Ⅰ.Ⅱ, 화학Ⅰ.Ⅱ 등의 과목을 선택하게 돼 있는데 난이도가 높은 물리Ⅱ.화학Ⅱ 등은 아예 선택하지 않는 학생이 많다. 이런 학생이 물리학과나 화학과에 진학하면 전공과목을 따라갈 수 없다."

-최근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전에도 학력차는 있었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때 기본적인 것들은 배웠지만 요즘은 아예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다. 쉬운 수능과 과학과목 선택제가 대학 교육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르치는 교수들의 어려움은?

"대체로 강의 수준을 낮추려 애쓴다. 그래도 준비 안 된 학생은 여전히 힘들고, 준비된 학생들에게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재 교육'도 도입했는데.

"그동안 서울대는 우수 학생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우수 학생이 수업에 흥미를 잃거나 중도에 유학을 가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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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교수
[現]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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