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서울대도 우열반 수업을 해야 하는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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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대가 내년부터 이공계 신입생의 수학.과학 실력을 측정해 우열반을 편성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실력차가 너무 커 수준별 교육을 하고, 영재과정도 운영한다는 것이다. 올해 물리 심화반을 신청한 신입생을 평가한 결과 과학고 출신은 평균 70점대인 반면 0점 맞은 학생도 수두룩했다고 한다. 우리 고교 교육과 대입 제도가 얼마나 잘못됐으면,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가운데 20%는 고교 수학과정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반면 일부 학생은 대학 1~2학년 과정까지 마친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는 강의 수준을 낮췄지만 실력 없는 일부는 따라오지 못하고, 반면 우수한 학생은 흥미를 잃어 유학을 간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이 정도이니 타대학은 어떨는지 우리 과학교육의 앞날이 우려된다.

잘못된 고교 교육과정과 정부의 대입 규제가 근본 원인이다. 현재는 고교에서 수학.과학 심화과정을 배우지 않고도 이공계에 진학할 수 있다. 물리 등 난이도가 높은 과목을 배우지 않는 이과생도 많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 교육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선발권이 꽁꽁 묶여 있는 현행 제도에선 대학이 학생들을 선별해 뽑을 방법이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점이다. 2008년 대입부터 도입된 수능.내신 9등급제로 인해 실력차가 많은 학생들이 같은 수업을 듣는 일이 더욱 늘 것은 뻔하다. 대학의 교육수준은 갈수록 낮아진다. 수학 등 기초과목 실력이 부족해 중도탈락하는 실업고 출신 학생이 많아 일부 대학은 수준별 교육을 하는 실정인데, 정부는 지난해 실업고 특별전형 모집인원을 크게 늘렸다. 이러니 대학들은 학생 교육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고교의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대입을 자율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