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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지구,갈림길에서다] 2013년 탄소세 도입한 한국의 모습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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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중순 아침. 출근길에 오른 대기업 부장 온난화(45)씨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승용차는 두고 다닌다. 휘발유에 ‘탄소세’란 것이 붙으면서 휘발유 값이 ℓ당 2500원을 훌쩍 넘었다. 가스에도 탄소세가 붙었다. 때문에 난방비를 아끼려고 내복을 입은 것은 물론이다. 특히 전기요금은 최근 3년 사이 두 배로 폭등했다.

회사 건물에 도착해서는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5층까지는 아예 엘리베이터가 서질 않는다. 점심 때 오래간만에 부서원들과 국산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었다. 1인분에 1만2000원. 5∼6년 전엔 같은 값에 싼 집에서 수입 쇠고기 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고기값이 오른 것도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엔 얼마든지 거저 주던 상추마저 삼겹살과 별도로 돈을 내고 주문해야 한다.

 가상의 얘기지만 이런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2013년부터 우리가 온실가스 한 해 배출량을 2000년 수준에 맞추게 되면 살림살이가 빡빡해진다. 교토의정서(용어설명 참조)에 따라 2008년부터 배출량을 1990년의 95%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 선진국의 감축의무보다 강도가 약한 데도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 올해나 내년에 2013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협상을 해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온실가스 감축으로 온난화 방지 노력에 동참해야 하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휘발유 1ℓ에 2500원=2013년 온실가스 배출을 2000년 수준으로 줄인다면 정말 전기요금이 두 배까지도 뛸 수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소를 크게 늘리지 않는 한, 화력 발전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량을 2000년도 수준에 맞추는 방법은 주 연료로 쓰는 유연탄을 모두 액화천연가스(LNG)로 바꾸는 것뿐이다.

이렇게 하면 2010년엔 연료비로 한 해 25조5000억원이 든다. 2006년(11조3000억원)의 두 배 하고도 3조원이 더 필요하다. 여기다 유연탄 발전시설을 LNG로 바꾸는 비용이 30조원가량 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요금이 두 배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기름값도 복병이다. 노르웨이 등 일부 선진국은 석유 소비를 줄이려고 휘발유ㆍ경유에 ‘탄소세’라는 것을 붙여 값을 올렸다. 우리도 이를 받아들이면 휘발유 값이 ℓ당 2500원은 넘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음식료품 값도 폭등=국산 고기값도 오른다. 소ㆍ돼지ㆍ닭을 키우는 데 난방과 전기 에너지가 많이 든다. 대략 사육비의 20%가량이 에너지 비용이다. 전기ㆍ기름값이 올라 고기값도 오르면 국산 고기를 찾는 소비자가 줄어든다. 농사를 포기하는 축산 농가가 늘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국산 고기 공급이 줄고, 이 때문에 고기값은 다시 한번 뜀박질할 것이 유력하다. 감귤ㆍ오이 등 주로 온실에서 재배하는 과일ㆍ채소도 에너지값 상승의 영향을 받는다.
 수돗물도 비싸진다. 서울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수돗물 제조ㆍ공급 비용의 17% 정도가 전기료다. 상수원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오고, 정수한 뒤에 각 가정까지 또 펌프로 물을 보내는 비용이다. 전기요금이 두 배로 된다면 결국 수도요금은 20% 가까이 오를 요인이 생긴다.

'탄소 포인트 카드'제도 도입하면…"커피 한잔 드셨네요 1포인트 공제합니다"

 영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탄소카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카드는 개인마다 1년 동안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을 정해 놓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것과 관련된 무언가를 살 때마다 카드에서 포인트가 내려간다. 예컨대 휘발유를 차에 넣으면 포인트가 깎인다.

1년이 채 못 돼 이 포인트가 떨어지면 포인트가 남아도는 누군가에게서 사서 써야 한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극단적인 아이디어다. 만일 우리도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다음과 같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
 
 2014년 12월 15일. 오피스텔에 사는 20대 후반의 직장 새내기 A씨는 거주지 구청에서 탄소카드를 충전했다. 무료로 5만 포인트를 채워줬다. 2015년 1년 동안 쓸 양이다.
 구청에서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광고 e-메일이 들어와 있다. ‘내년치 탄소카드 5000포인트 팝니다. 1포인트당 50원.’ 등등이다. 웃어넘겼다.
 2015년 1월 3일. 사무실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하나를 뽑았다. 자판기에는 탄소카드 투입구도 있다. 무슨 음료를 마실지 선택버튼을 누른 뒤 탄소카드를 넣어야 음료가 나온다. 물을 데우는 데 전기가 들고, 전기를 만들 때 온실가스가 나온다며 1포인트가 깎였다.

집에서 쓰려고 A4 복사용지 250장짜리 한 권을 살 때는 10포인트를 덜어냈다. 좀 과한 것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종이 제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오고, 종이 원료를 만들려고 나무까지 베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전철ㆍ버스도 탈 때마다 1포인트씩, PC방에서도 시간당 1포인트를 내야 했다.
 스키장에 놀러가면서 차에 휘발유 50ℓ를 넣었더니 500포인트나 깎였다. 1월치 전기요금을 내면서 다시 800포인트 내려갔다.

어째 조짐이 심상치 않다. 좀 춥다고 난방을 펑펑 해대고, 피로를 푼다고 밤마다 반신욕을 했더니 1200포인트를 지불해야 한다는 가스요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2015년 10월 중순. 지난해 말 무료 충전한 5만 포인트를 거의 다 썼다. 500포인트밖에 남지 않았다. 큰 일이다. 다급히 포인트 거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 연초엔 포인트당 50원 내외였는데, 이젠 200원까지 뛰었다. 포인트가 거의 바닥나 사려는 사람이 많아졌나 보다. 어떻게 하나. 한 달에 5000포인트 정도를 쓰니 1만 포인트를 사려면 무려 200만원인데. A씨의 심각한 고민이 시작됐다.

◆도움 준 곳=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ㆍ에너지경제연구원ㆍ한국농촌경제연구원ㆍ한국전력

◆교토의정서=1997년 미국ㆍ일본ㆍ영국 등 38개 선진국이 일본 교토(京都)에 모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고 맺은 약속입니다. 나라마다 줄이는 양이 조금씩 다른데, 평균적으로는 2008∼2012년 동안의 배출량을 1990년도의 95%에 맞추기로 했습니다. 미국과 호주는 일단 참여했으나 이대로 할 경우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를 들어 탈퇴해 현재는 36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의 위기=국제 사회에서는 2013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교토의정서 당시에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 한국도 2013년 이후에는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하라는 국제적인 압력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0위이기 때문입니다. 의무감축이 시작되면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이 예상됩니다.

◆특별 취재팀

▶팀장=송상훈 정책사회데스크
▶경제부문=박방주 과학전문기자,권혁주, 박혜민 기자
▶사회부문=강찬수 환경전문기자,임장혁 기자
▶국제부문=류권하 기자
▶영상부문=조문규 기자
▶그래픽=박용석 기자

envirep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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