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밖] 식당 손님에게 이래라저래라 '비의 과잉 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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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일본 도쿄돔 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는 비. [도쿄 AP=연합뉴스]

25일 밤 11시20분. 가수 비의 도쿄돔 공연 취재를 마친 기자들이 도쿄의 한 한국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하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비가 식당에 들어왔다. 원래 없던 일정이었다. 비는 청바지 차림에 모자를 눌러 쓴 채 매니저와 함께 식당에 들어왔다. 그러고 기자들에게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홀 한구석에 앉았다.

기자와 같은 테이블에는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이 함께 앉았다. 그는 홀과는 구분된 방 쪽을 계속 쳐다보더니 일본어로 "문을 닫아 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방에서 식사하고 있던 일본인 손님들에게 한 말이다. 비가 식당에 들어올 때 그는 기민한 동작으로 방 쪽으로 가더니 방마다 얼굴을 들이밀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손님들은 순순히 요구에 응했다. '일'에 급했던 일부 손님은 고개를 숙이고 화장실에 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과잉 경호였다. 팬들의 격렬한 반응으로 스타 보호가 필수적인 공항 입국장이나 콘서트장이라면 모를까, 식당 손님에게 이런 과도한 요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월드스타' 비에게 오히려 누가 되는 행동이었다. 더욱이 그날 비의 식당 방문은 예정에도 없던 것이고, 식당 손님들이 모두 비의 팬이라는 보장도 없다. 경호원의 기세에 눌려 문틈으로 비를 쳐다보던 일본인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치 무슨 잘못을 한 듯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만약 국내에서 공연한 일본 가수의 경호원이 식당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한국 손님들이 그냥 넘어갔을까. 해당 경호업체는 지난달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한 가수 아이비를 보호한다며 학생.교사들에게 폭언.폭력을 행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비는 월드스타를 겨냥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호의 수준도 그에 걸맞아야 한다. 무조건 접근불허식의 고압적 태도는 역효과를 낳는다. 해외공연이 문화교류요, 상호이해라면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어선 곤란하다. 지난번 아이비 경호원의 폭행 사건도 경호업체는 물론 가수 본인까지 나서 공식 사과를 하는 등 스타의 이미지에 상처를 남겼다.

스타의 '밥줄'은 이미지다. 경호 또한 이미지 메이킹의 한 부분이다. 한번 손상된 스타의 이미지는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날 식당의 손님들이 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비는 세계를 무대로 콘서트를 해야 한다. 팬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호는 '월드스타'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도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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