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두 대표의 초당외교/박병석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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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김대중·이기택 두 공동대표의 러시아 및 대만 방문은 대통령선거를 앞둔 대내용 성격도 있지만 과거와 달리 초당외교에 임하는 야당의 새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됨직 하다.
특히 민주당이 한중수교에 따라 격앙상태에 빠진 대만에 이 대표를 단장으로한 사절단을 즉각 파견했던 자체는 돋보인 순발력이었다.
이 대표 일행은 한중수교협상 진행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소외될 수 밖에 없어 체면(면자)을 몹시 깎였다고 생각하는 대만정부와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을 다소나마 진정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 일행은 한­대만 단교에 대한 섭섭하고도 착잡한 심정 및 양국민의 변함 없는 우의지속을 바라는 우리 국민의 정서를 대만정부와 국민에게 성실하게 알리려 노력해 정부와 집권여당이 당장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김대중대표도 러시아 방문에서 우리의 입장을 국익차원에서 반영하려는 외교기조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김 대표는 러시아정부 고위당국자들과의 면담에서 한국의 야당은 물론 적지 않은 국민들이 30억달러의 대소차관에 회의적임을 분명히 하고 그쪽 입장을 타진하려 했다.
김 대표는 또 KAL기 피격과 관련한 블랙박스 등 모든 자료와 한국전쟁에 관한 러시아의 기밀문서 공개 등 역사적 진실규명을 위한 러시아정부의 성의 있는 조처와 사과를 촉구했다.
김 대표는 한소수교 당시 해결됐어야 했던 이같은 문제들에 관해 러시아정부가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만 양국민간에 진정한 우호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간곡하게 설득했다.
김 대표는 또 러시아 출발직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연기소식을 듣고 수행했던 한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유리하게 됐다』고 하자 이를 크게 나무라기조차 했다.
김 대표는 옐친이 방일에 소득이 없을 것 같자 한국 방문까지 취소한 것은 한국민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러 양국의 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성숙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민주당의 김·이 두대표가 보인 이같은 초당외교의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돼 말썽 많았던 의원외교의 행태를 씻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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