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5)|제88화 형장의 빛|박삼중(30)|소피아 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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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신을 철저히 숨기면서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최소피아 수녀다. 「거리의 종교」「불우이웃을 돕는 종교」로서 좋은 교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전이 뒤따르지 못해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요즘의 불교계를 볼때 남을 돕는 면에서 보면 가톨릭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내가 최수녀를 만난 것은 81년5월24일, 지도법사를 맡고있던 대구 진여원 포교당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대구시립희망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부처님오신날인 11일 청년회에서 불우이웃돕기 가두모금운동으로 모은 40만원으로 건빵· 담배·칫솔·치약등 일용품을 마련하여 천주님의 사망을 실천하는 희망원 원생들에게 전달하고 위문한 것이다.
대구시립희망원은 걸인과 정신이상자· 무의탁 지체부자유자 등을 수용하는 복지시설로 80년 4월 대구시로부터 전주교대구교구가 운영권을 넘겨받아 운영해오고 있었다.
최수녀는 희망원 개원이래 스님의 방문은 처음이라면서 반갑게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최수녀는『천주교나 불교는 사랑을 실천하는 근본정신에는 다름이 없다』면서 종파나 교리를 떠나 마음과 힘을 모아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자고 말했다..
나는 최수녀에게 천주교의 「사랑의 실천」「나눔의 미덕」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하자 수녀는 그다지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오히려 부끄럽다고 얼굴을 붉혔다.
7백50여명의 원생을 수용하고 있는 대구시립희망원은 테레사 수녀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이땅에서 가장 불행한 곳이 어디냐.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겠다』고해 첫날밤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는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하루를 보낸 뒤 『한국에도 성녀가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미천한 사람들을 형제처럼 보살피는 최소피아 수녀가 바로 성녀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최수녀의 팔과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주사를 놓거나 치료를하려 할 때 환자들이 위해를 가해생긴 상처들이라고 했다.
한번은 최수녀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정신질환자가 질문하기를『어떤 사람이 성녀인가. 수녀님은 과연 하느님 뜻을 올바로 전하고 있는가』라고 느닷없이 질문했다. 최수녀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자신이 대답하겠다고 하면서 일어서더니『당신은 사기꾼이다. 성녀가 아니다. 사랑을 가지고온 평신도가 바로 우리에게는 성녀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수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얘기를 숨김없이 말하는 솔직하고 깨끗한 최수녀의 마음을 읽고 참으로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다. 남이 하기 어려운 선행을 실천하면서도 자만에 빠지지 않고 원생들 말 한마디에도 큰 자극을 받아가면서 자신을 잘관리하는 것은 매우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생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한달에 한번씩 원생들을 대상으로 설법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천주교가 운영하는 희망원에서 불교 설법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도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최수녀를 보면서 드러내지 않고 희생과 봉사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참봉사의 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지금은 다른 카톨릭단체에서 봉사하고 있는 최수녀와 다른 봉사수녀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잿빛 승복을 입은 승려와 순백의 수녀복을 입은 수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봉사의 길로 나서는 모습을 자주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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