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항소심] 삼성 항소심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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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을 공모해 회사에 97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左)과 허태학 전 사장이 항소심 선고공판을 위해 29일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과 관련, 삼성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오자 당혹해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CB 발행이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꾸민 것이라는, 이른바 '공모론'에 대해 법원이 '사실상 혐의 없음'이라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29일 선고에 대한 소감을 "안타깝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무죄를 주장해 오면서 나름대로 자신감을 보였는데 유죄판결이 나오자 유감을 표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당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데다 어느 정도 기업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삼성 내부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영에 온 힘을 쏟아야 할 텐데, 그룹 최고경영진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재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은 이번 판결로 '그룹 공모론'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공모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공모 부분은 검찰 공소장에 없어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삼성 법무실 김수목 변호사는 "검찰이 명시는 하지 않았지만 공소장에서 '지배권을 넘기려고 CB를 발행했다'는 식으로 기술해 사실상 그룹 차원의 공모를 주장했다"며 "그런데도 재판부가 공모 부분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삼성 고위 인사는 "공모 혐의에서 벗어남으로써 검찰이 수사를 확대해 이건희 회장까지 소환 조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가장 우려했던 총수 소환사태는 일어나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총수가 소환되면 나중에 혐의가 없다고 밝혀지더라도 소환 자체로 그룹 이미지와 경영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삼성은 애를 태워 왔다. 재계는 공식 반응을 유보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황인학 상무는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도 최근 비용 절감에 허리띠를 졸라맬 정도로 극심한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법적 공방에 힘을 분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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