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 걷는 불영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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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 영화산업이 완전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제작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영화관을 찾는 손님 수는 해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봤자 제작비라도 건지는 영화는 10편중 2∼3편에 불과하다.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극장들이 늘고 있고 한 때 알아주던 제작자들도 하나 둘 영화계를 떠나고 있다.
칸영화제에 맞춰 지난 봄 개봉된 프랑스 영화『돌아온 카사노바』.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았다. 10년 전에 비해 그의 개런티는 3배가 올랐지만 그의 관객 동원력은 10분의 1로 줄어 들었다. 파리 지역의 경우고작 8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을 뿐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프랑스영화를 구경한 관객수는 모두3천만명. 10년전인 82년의 1억8백만명에 비해 3분의1도 안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중 프랑스 영화의 편당 평균 제작비는 6백40만프랑(약10억원)에서 2천4백40만프랑(약39억원)으로 거의 4배로 뛰었다.
프랑스 영화의 급격한 제작비 상승을 주도한 것은 고몽·파테·UGC등 영화재벌들. 제작과 배급, 극장을 한손에 움켜 쥐고 있는 이들 영화재벌들은 멀어지는 파랑스 관객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작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서로 물량으로 맞서는 제살 깎아 먹기식의 경쟁만 초래했을 뿐 관객의 감소 추세를 막지는 못했다. 재벌들의 물량 공세에 군소 제작자들도 무리해 가며 오기로 맞서다 보니 전체적으로 제작비가 급증, 영화산업 전체의 수익성만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알면서도 프랑스영화제작자들은 대작에 승부를 거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영화로는 보기 드문 금액인 1억2천만프랑(약1백90억원)을 들여 만든 『연인』으로 그럭저럭 재미를 본 파테그룹은 현재 1억6천만프랑(약 2백56억원)이라는 프랑스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여 에밀 졸라의 소설을 각색한 『제르미날』을 제작중이다.
저조한 흥행실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화의 제작 편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TV방송쪽의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흥행에서 실패하더라도 방송국에 대한 판권 수입으로 어느 정도 보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독립제작자인 장 라바디는 1억프랑(약1백60억원)을 들여 지난해 『인도차이나』를 제작, 프랑스 전국에서 3백만명 이상을 동원하는데 성공했지만 제작비를 뽑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TV방영권료로 18개월마다 5백만프랑의 수입을 확보, 손해는 보지 않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캬날 플리스· TFI 등 프랑스 TV방송사들은 영화 제작사를 설립, 자체 제작하거나 제작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TV에 방영할 영화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영화산업이 생존을 위해선 TV의 자금지원에 의존해야하는 현실이지만 그러다 보면 제7의 예술로서 무대영화 자체가 종말을 고하게 될지 모른다는데 프랑스 영화계의 딜레마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처럼 퇴조를 보이는 영화산업을 구하기 위해 월요일에 적용하는 할인 요금제를 학교 수업이 없는 수요일로 바꿔 전체 관객의 절반을 차지하는 학생층의 영화관람을 장려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미국 영화만 좋은일 시켜주는 꼴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를 관람한 프랑스인은 6천만명으로 프랑스 영화를 구경한 사람의 배에 달했다.
【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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