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자실 통폐합 과정서 90명 의견수렴 했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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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8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선 의원들이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놓고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을 집중 추궁했다. 비판엔 여야의 구분이 없었다.

특히 국정홍보처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브리핑 룸 축소, 기자들의 출입 제한 등 핵심 사안에 대해 언론.학계 등을 상대로 구체적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김 처장 "의견수렴 안 해" =김 처장은 이날 "브리핑 룸을 줄이고 기자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언론인.학자들에게) 설명했느냐"는 한나라당 김학원 의원의 질의에 "구체적인 것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어 "정부안을 가지고 구체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의 질문에 대해 "정부안을 내놓고 구체적 의견수렴을 했으면 정상적으로 발표하기가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언론학계, 취재기자 등 90명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는데 90명 중 54명이 공무원이었고 기자는 기자협회 회원 4명과 인터넷 기자 5명이 전부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자협회 측과 만났을 때 '나중에 안이 나오면 구체적으로 협의하자'고 해놓고 (협의 없이) 발표해 버렸다"고 꼬집었다.

청와대의 개입 논란과 관련, 김 처장은 "홍보수석실과 긴밀히 협의해 안을 만들었다"면서 "대통령이 해외 언론 실태(를 알아보라는) 조사 지시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기자가 무단 난입자냐"=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대해서는 정부의 방침이 "밀실행정과 공직사회의 부정을 양산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최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건이 전자 브리핑제에서 취재가 됐겠나. 오히려 은폐하려 했을 것 아닌가. 결국 취재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밀실행정, 공직사회 부정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국회에서 그렇게 자료를 요청해도 국정홍보처는 끊임없이 기피해 왔다. 어떻게 언론에 정보를 제대로 공개한다는 건가."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정부가 언론인을 적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적대감.거부감을 가지고 모든 언론과 각을 잡는 데는 안타까움이 있다."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충분히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필요한데 갑자기 벼락 치듯 해버리니 논란이 크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시점도 부적절하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정부가 업무 공간에 대한 무단 출입을 방지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설을 무단으로 침입한 난입자라고 보는 것과 같다."

▶한나라당 김학원 의원="기자들의 출입을 제한하면서 시스템 선진화란 말을 함부로 쓰나. '막가파' 식 생각으로 어떻게든 비밀정보라도 새지 않게 하겠단 의도가 아닌가."

하지만 친노(親盧) 성향의 이광철 의원은 "무단출입 제한을 취재 제한으로 보는 것은 왜곡"이라며 정부를 옹호했다.

김 처장은 답변에서 "이번 정부안이 시행되면 국민의 알 권리가 확대된다고 확신한다"며 "언론과 정부가 투명한 관계가 되면 정부에 대한 언론의 감시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나라 "국정홍보처 폐지" 당론화=한나라당은 이날 국정홍보처 폐지에 관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기자실 통폐합을 저지하는 내용의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한나라당은 의원총회에서 이같이 결정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나경원 대변인이 전했다.

강재섭 대표는 "국정홍보처를 반드시 폐지하겠다"며 "자유 언론에 대한 산소 마스크를 떼려는 간신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사초에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호.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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