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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저 공중 아닌 수챗구멍에 있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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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밀양’의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창동(53) 감독의 '밀양'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감독은 2003년 2월부터 2004년 6월까지 노무현 정부의 첫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이 감독과 '각료 동기'인 강금실(50) 전 법무부 장관이 영화 '밀양'에 대해 글을 썼다. 강 전 장관은 2004년 7월에 장관직을 관뒀다. 중앙일보는 강 전 장관을 '1일 기자'로 위촉했다.

이창동 감독과 엇비슷한 시기에 공직을 그만둔 지 1년쯤 지난 2005년 여름날, 나는 서울 성북동에서 그를 만났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에 얼굴은 까칠해지고, 훌쩍 큰 키에 청바지 차림으로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 남자와 같이 정신적 거처를 찾아 헤매는 거리의 깡마른 도사 같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은 온통 '밀양'으로 꽉 차 있었다.

密陽,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 숨어 있는 빛, 마음의 빛. 그에게서 시크릿 선샤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 멋있다, 숨어 있는 빛이라니, 있기는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찾아내야 하는 그 밝음의 세상…'.

그렇게 나는 평소의 경조부박한 성격대로 마구 떠들어댔다. 아마도 그가 공직을 그만두기도 전부터,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밀양'이라는 주제는 이 감독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숙제와 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그날, 그는 시크릿 선샤인을 영상에 담자니까 정말 잘 풀리지 않는다고 끙끙대고 있었다. 내가 알기에도 이미 여러 해째의 고민이었다. 마침 그와 점심을 먹게 된 음식점 앞은 순교복자수도회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수도원장이신 양낙규 신부님과 같이 식사하면 어떠냐 하니, 그는 옳다구나 하며 선뜻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셋이 둘러앉게 된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 감독은 라르고의 속도로 진행되는 평소의 말투로 천천히 '밀양'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낳은 자식에게 가해진 죽임이라는 극단의 고통과 시련, 상처와 용서의 문제.

사람에게 구원이 있는 것일까? 가능한 것일까? 도대체 구원이란 게 무어냐? 그런 이야기였다.

주인공 여인이 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려고 찾아갔는데, 그는 이미 하느님에게서 용서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당한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느님이 용서한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이냐, 이때부터 주인공 여인의 방황은 다시 시작되고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 감독의 이야기를 듣던 양 신부님께서 대뜸 구원에 관한 언급을 해 주셨는데 나에게는 죽비로 어깨를 때리듯 정신이 드는 의외의 말씀이었다.

"대개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순결해져서 세상을 극복해 떠나는 것이 구원 같은데, 다르게 해석하는 견해도 있어요. 스테인드 글라스에 빛이 들면 그 무늬의 음영에 따라 밝은 부분은 밝은 대로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대로 다채롭게 형상이 드러나듯이 구원은 빛과 그늘이 얼룩져 있는 그 상태대로의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 이야기 한번 읽어 보세요."

그날 이 감독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은 아직 구상 중인 라스트 신이었다.

집 앞마당에서 여인이 앉아 머리를 자른다. 머리카락이 표표히 바람에 실려 날아 다니다가 마당 한구석 수챗구멍 위로 쓸려가 내려앉는다. 그 수챗구멍 위에 희미한 한줄기 햇빛이 서린다.

구원은 저 공중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의 밑바닥 수채 속에, 모든 증오와 분노와 용서와 후회가 엉클어진 그 안에 조용히 숨어 들어 서려 있는 것. 그 라스트 신에서 나는 시크릿 선샤인을 상상해 보았다.

그날 이후 밀양에서 영화 촬영이 시작되면 꼭 한번 가겠다고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드디어 5월 1일 시사회가 열리게 되었으나 또 못 갔다. 28일 저녁에 보러 가려고 밀양 표를 사다 놓았는데, 칸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장식이라곤 없는 맨얼굴로 연기와 진검승부한 전도연씨가 마땅하게도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쾌거다. 아무래도 우리는 지금 선샤인으로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찡그리게 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지금, 희망을 나누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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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법무법인우일아이비씨 고문변호사
[前] 법무부 장관(제55대)

1957년

[前] 문화관광부 장관(제6대)

1954년

[現] 영화배우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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