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흡연율 0% 성공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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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하루에 담배 한 갑 이상을 피워 '골초'로 낙인찍혔던 서울 강동구 둔촌동 한산중 3학년 정재민(가명)군. 그는 3월 새 학기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교무실 김동수(43) 학생인권교사 자리로 등교했다. 흡연 측정기로 흡연 여부 체크도 하고 건강 상담도 받기 위해서다.

처음엔 흡연 수치(인체 내 일산화탄소 농도)가 0.8ppm을 넘었다. 하루 전 흡연했을 때 나타나는 수치다. 이 수치가 0이 돼야 금연 성공을 인정받는다.

정군의 흡연 수치는 줄곧 하강 곡선을 그렸다. '0.8, 0.8, 0.48, 0.32, 0.3, 0.16, 0.1, 0ppm…'. 드디어 이달 14일 금연에 성공했다. 김 교사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기습 체크'를 받아야 하지만 두 달 반 만에 '등교 후 교무실 직행'에서 해방된 것이다.

정군만이 아니다. 한산중 학생 가운데 담배를 피웠던 학생이 모두 '금연'에 성공한 상태다. 올 들어 학교 측이 학생 흡연율 '0%' 도전에 나서 성과를 거둔 것이다.

21일 서울 한산중의 김동수 교사가 금연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있는 학교 복도에서 한 학생에게 흡연측정기를 불어보게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 흡연율 제로에 도전=학교는 학생들의 '금연'을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체벌 없는 학교'가 모토여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벌줄 수도 없었다. 학부모를 불러오고 반성문도 쓰게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말로 따끔하게 혼을 내도 그때뿐, 사제 간의 '담배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이때 방재우 교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예 흡연 여부를 알 수 있는 흡연 측정기를 활용해 흡연 학생들을 확실히 교육하자"고 한 것이다.

학교 측은 학기 초 흡연 학생부터 가려냈다. 전교생 930명 중 여학생 네 명을 포함해 16명이 '상습 흡연자' 리스트에 올랐다. 김 교사는 이들에게서 금연 서약서를 받아냈다. 이틀에 한 번씩 교무실로 불러 흡연 여부를 체크하고 건강 상담도 했다. 골초로 분류된 네 명은 삼육대 금연클리닉에서 금연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도록 했다. 학교 인근 한의원에서 금연침도 맞게 했다. 학생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에 빠지면 교내 보건실을 찾아 상시 비치된 금연껌을 씹고 사탕을 먹었다.

이들은 결국 이달 중순 담배를 끊는 데 모두 성공했다.

◆ "자존심 상하니 끊자"=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에 손을 댄 김정우(가명.15)군은 "선생님 앞에서 수시로 흡연 측정기에 대고 검사받는 게 창피해 차라리 끊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철형(가명.15)군은 "이젠 현기증이 없어지고 오래 달려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김 교사는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의심만 하면 신뢰가 깨져 금연 지도가 어려워진다"며 "체벌보다 아침마다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대화하는 과정에서 친화력이 생겨 아이들이 금연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흡연 측정기 사용에 대해 그는 "조심스럽긴 했지만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 때 금연 프로그램을 충분히 이해시켜 항의가 들어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 흡연 측정기=인체 내 일산화탄소의 농도(ppm)로 흡연 상태를 측정하는 기기다. 성인은 1.76ppm을 넘으면 '상습 흡연자'로, 폐의 오염도가 낮은 청소년은 0.8ppm을 넘으면 상습 흡연자로 분류한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수입하며 가격은 대당 150만~250만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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