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상복합 원조 세운상가 내년 9월부터 연차 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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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가 철거될 자리에 2015년까지 들어설 녹지공원과 새 건물의 조감도.

1960년대 이후 서울 도심 상업공간의 대명사였던 세운상가가 내년 9월 40년의 풍상(風霜)을 마감한다. 종로를 사이에 두고 종묘와 마주보는 현대상가 건물을 시작으로 세운상가 8개 동이 연차적으로 철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세운상가를 철거해 이 자리에 폭 90m, 길이 1㎞의 녹지공원을 2015년까지 만든다"고 28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종묘 앞부터 남산 부근까지 총 2만7000평 규모의 대규모 녹지 축이 서울 도심에 자리 잡는다.

녹지 축 조성은 13만2000평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과 함께 진행된다. 서울시는 재정비사업으로 개발 이익을 볼 사업자들에게 녹지 축 조성비용을 부담케 하고 대신 이들에게 건축 용적률을 높여준다. 서울 도심에서는 도심부관리계획에 따라 건물 높이가 90m로 제한되나 이곳 재정비사업에서는 122m 높이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서울시는 "녹지 축 조성 비용은 약 1조원이며, 이 중 95%를 철거 보상비로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녹지 축은 ▶종로~청계천(2008년)▶청계천~을지로(2009~2012년)▶을지로~퇴계로(2009~2015년) 구간 등 3단계에 걸쳐 추진된다. 이 계획에 따라 현대상가(1단계), 세운가동.청계상가.대림상가(2단계), 삼풍상가.풍전호텔.신성상가.진양상가(3단계) 등 8개 동을 순차적으로 철거한다.

우선 종로를 사이에 놓고 종묘와 마주하는 현대상가 건물이 내년 9월께 철거된다. 철거 보상에 1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상가는 13층 건물로 현재 79가구가 입주해 있다. 상가가 철거되는 자리에는 폭 70m, 길이 90m의 녹지가 생긴다. 녹지 주변에는 판매 및 업무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공동주택 등이 들어선다. 다만 종묘에 가까운 도로변 건물은 55m로 높이를 제한한다.

서울시는 올 8월부터 보상을 시작, 내년 9월까지 보상 및 철거를 완료한다. 개정된 토지보상법이 서울시에서 처음 적용돼 무허가 건축물 세입자 및 무허가 건물 임차 영업자에게도 보상해줄 예정이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 시민 토론회를 거쳐 여론을 수렴한 뒤 내년 1, 2월께 세운 녹지 축에 대한 현상설계를 국제공모할 계획이다.

서울시 문승국 도심활성화추진단장은 "세운 녹지 축이 조성되면 북악산~종묘~남산~용산~국립묘지~관악산으로 이어지는 거대 녹지 축이 형성된다"며 "청계천과 세운 녹지 축이 도심 속의 신도심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연 많은 세운상가=세운상가 일대는 일제가 전쟁 때 폭격 등으로 인근 명동.동대문 등에 화재가 날 경우 대피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을 보류해 놓은 곳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판자촌이 형성되고 무허가 노점상이 들어섰다. 이후 68년 '불도저 시장'으로 유명한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이곳을 재개발했다. 주상복합의 원조 격인 셈이다. 김 시장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상가가 되라'는 뜻에서 세운(世運)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15년 만인 82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건물이 계속 노후화하고 빈 점포가 늘어나면서 상권이 크게 위축됐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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