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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잃어버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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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러나 나의 관심은 그런 듣기 좋은 말보다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있었다. 일본은 1991년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15년의 침체기를 보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일본에 갔을 때 도쿄의 한 간부에게 "일본이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간부는 머뭇거리다가 "직장을 잃어버리고, 자산을 잃어버렸다는 의미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이 회장은 "그것보다는 일본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꿈과 희망을 잃었던 그 일본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미쓰비시 그룹이 모여 있는 도쿄역 앞 거리는 활력에 차 있었다. 지하 8층까지 지하도로 이어져 지하 거리만도 24㎞에 이른다는 신(新) 마루노우치 빌딩에는 연인원 2000만 명이 몰려든다고 했다. 96%의 취업률에 웬만하면 서너 군데서 직장을 제안받고 있는 일본 대학생들은 다시 꿈을 갖고 뛰기 시작했다.

곤도 의원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한 동력을 역설적으로 관료제의 붕괴에서 찾았다. 일본 경제를 주무르던 관료들이 버블붕괴로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공무원들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이 약해지면서 정부 규제가 줄기 시작했다. 규제완화에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역할도 컸다. 올 봄부터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경우 감세를 해 주고 도쿄 등 대도시에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우리처럼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기업을 억지로 지방 이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방으로 갈 경우는 세제 등에서 우대를 해 주었다.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한 인재은행법이 곧 중의원을 통과한다. 공무원은 이제 더 이상 대학생들의 선망이 아니다. 대장성이나 경제산업성을 찾던 도쿄대 출신 일류 인재들이 이제는 골드먼 삭스 등 글로벌회사로, 일본 민간회사로 옮겨 가고 있다. 공무원 사회가 무너지는 것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소리도 들었다. 국가의 기간요원이기 때문이다. 이공대생까지 고시에 매달려 있는 한국과는 비교가 되었다.

경제활력을 되찾는 데는 중소기업의 힘이 컸다. 도요타 등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등은 중소기업들의 탄탄한 기술력에 힘입어 수출을 늘렸다. 높은 임금을 피해 중국으로 갔던 중소기업들이 돌아오고 있다. 임금을 보전할 만한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수출과 설비투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평생직장 관념이 강했던 일본에도 비정규직이 400만 명에 이르렀다. 노동생산성은 그만큼 높아졌다.

한국도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절이었다. YS 말기의 국가부도사태를 시작으로 북한에 퍼주기와 권력부패가 심했던 DJ시대, 성장에는 눈을 감고 균형과 평등으로 4년을 허송한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분야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피해는 힘없는 서민, 갓 졸업한 젊은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갔다. 대신 말로는 개혁이니 혁신이니 떠드는 무리들은 끼리끼리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 하이라이트가 이과수 폭포의 혁신 세미나다. 참여정부를 한다면서 군사독재 시절보다도 더 언론을 옥죄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관료 탓이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잃어버린 10년은 바로 이들 탓이다.

밖에서 우리를 칭찬해 주는 것은 그나마 과거 쌓아놓은 힘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파먹을 김칫독도 없다. 중국은 바짝 쫓아오고 일본은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한국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 더 큰 나라의 틈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잃어버린 10년의 물줄기를 바꾸어야 한다. 사람도 성장기를 놓치면 키가 클 수 없듯이 국가도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10년이 한국으로서는 마지막 기회다. 이를 허송하면 우리는 3류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