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칸영화제 결산 … '환갑'의 칸, 젊은 피 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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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맞은 칸영화제가 '젊은 피'를 선택했다. 27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0회 칸영화제는 루마니아의 신예감독 크리스티안 문지우의 '넉 달 삼 주 이틀'에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자 4명은 대부분 빈손으로 돌아갔다. 미국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라노이드 파크'가 60주년 기념상을 받아 체면을 세웠다. 미국영화로는 유일한 수상작이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지우(右)가 제인 폰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칸 AP=연합뉴스]

◆동유럽.동아시아, 동쪽이 빛났다='넉 달 삼 주 이틀'는 불법낙태를 하려다 호된 대가를 치르는 여대생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인 1987년은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통치하던 시절. 폭압적 시대가 힘없는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공포영화'처럼 묘사됐다. 루마니아 영화로는 12년 만에 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문지우 감독은 수상 직후 "오늘이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 아니길 바란다"는 말로 당찬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6개월 전만 해도 돈이 없어 영화를 만들 생각조차 못했다"며 "이번 수상이 전 세계 작은 나라의 작은 영화에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루마니아는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의 최고상까지 받았다. 젊디젊었던 감독 크리스티안 네메스쿠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다. 코소보를 무대로 역시 정치적 함의가 깔린 작품이다. 네메스쿠 감독은 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해 28세로 요절했다. 두 작품의 독재 시절 이후 만개하기 시작한 루마니아 영화의 좌표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한 외국기자는 문지우 감독에게 "당신을 모르는 루마니아 사람들도 지금 울고 있다"는 말로 감격을 전했다.

올해에는 동유럽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러시아(남우주연상)영화도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시아 영화도 경쟁작 3편 가운데 2편이 수상하는 성과를 냈다. 경쟁작 22편 중 가장 늦게 상영된 일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모가리의 숲'은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터키계로 독일에서 활동중인 파티 아킨 감독의 '천국의 가장자리'(각본상)까지 합해 '동쪽'의 잔치였다.

◆젊은 신예들에 영광을=황금종려상의 문지우(39)와 심사위원대상의 가와세(38)를 필두로 수상작 대다수가 30대~40대 초반 젊은 감독들의 작품인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대개 칸 경쟁부문에 처음 진출했다.

파티 아킨(34)은 각본상 수상만으로도 싱글벙글했다. 2004년 '미치고 싶을 때'로 이미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던 그는 "경쟁부문에 진출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초청된 것만으로도 감격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 특별상을 공동 수상한 멕시코 영화 '침묵의 빛'과 프랑스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역시 30대 감독의 작품이다. '침묵의 빛'은 카를로스 레이가다스(36)의 세 번째 장편이며, '페르세폴리스'는 공동감독 마리얀느 사트라피(39)와 뱅상 파로노(37)의 첫 작품이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추방' 역시 안드레이 즈비아귄체프(43)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미국 미술가 출신으로 영화감독이 된 줄리안 슈나벨(56)은 세 번째 장편 '잠수함과 나비'로 감독상을 받았다. 전신마비 상태에서 눈꺼풀만으로 책을 쓴 전직 잡지편집장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평단의 반응이 좋아 더 큰 상을 기대했던 듯 감독의 얼굴에서 다소 아쉬운 기색이 읽혔다.

◆정치와 예술의 줄타기=올 칸은 '정치'에 방점을 찍었다. '넉 달 삼주 이틀'은 물론 터키이민자와 독일인의 갈등을 주목한 '천국의 가장자리'와 이란혁명 이후 숨막힐 듯한 사회에서 성장한 소녀를 다룬 '페르세폴리스'에 주요 상을 안겼다.

하지만 고독한 예술영화를 격려하려는 의지도 뚜렷했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러시아 영화 '추방'이 한 예다. 강력한 롱테이크의 힘을 느끼게 하는 첫 장면부터 탁월한 카메라 움직임이 돋보였지만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빈약해 반응이 크게 갈렸던 영화다. 심사위원단 회견에서는 영화제 내내 호평을 받았던 '늙은이에게 땅은 없다'의 주연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상을 주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 나왔다. 멕시코 영화 '침묵의 빛'은 신앙심 돈독한 주인공이 불륜에 빠져 고뇌하는 내용이다. 느리고 정적인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모가리의 숲' 역시 일본의 주류영화계와 거리가 먼 작품. 아들을 잃은 젊은 엄마가 오래전 아내를 잃은 치매노인을 만나면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도입부의 전통장례식 등 일본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가와세 감독은 "경쟁부문에 나온 유일한 일본영화라는 점까지 부담이 컸다"며 "내 영화는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전세계의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칸=이후남 기자

칸영화제 이모저모

○…반전운동가로 활동 중인 할리우드 여배우 제인 폰다(70)가 칸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칸 60년 역사에서 공로상은 이번이 세 번째다. 역대 수상자는 프랑스 감독 알랭 르네와 제라르 우리, 프랑스 여배우 잔 모로다. 질 자콥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인 폰다는 싸워서 이기는 여성"이라며 "미 연방수사국(FBI)이 감시하는 인물에게 상을 줄 것으로는 상상도 못했다"고 농담을 던졌다. 폰다는 1972년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이어 최근엔 이라크전 반대시위로 미국 정부와 충돌하고 있다.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올 칸영화제의 수상 결과에 일침을 놓았다. 버라이어티는 황금종려상을 제외한 나머지 수상작이 '나눠먹기' '타협' 방식으로 선정됐다고 비판했다. 잡지는 특히 프랑스와 관련된 영화에 우호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일본.프랑스가 합작한 '모가리의 숲'(가와세 나오미)은 매우 지루해 상영 도중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 속출했지만 뜻밖에도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으며, 프랑스의 투자를 받은 '파라노이드 파크'(구스 반 산트)도 썩 좋지 않은 평가에도 60주년 기념상을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감독상을 받은 '잠수종과 나비'(줄리안 슈나벨) 역시 프랑스 자본이 투자하고 프랑어로 만든 영화라고 지적했다.

○…전도연은 27일 시상식에서 소매 없는 랄프 로렌의 금색 드레스 차림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바닥을 살짝 덮는 길이의 드레스는 몸매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실루엣에 큰 장식이 없는 의상이었지만 손에 든 클러치백이 그의 감각을 돋보이게 했다. 테두리가 화려한 크리스털로 촘촘하게 장식된 까만색 스와로브스키 백은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지미추의 커피색 구두와 앙상블을 이뤘다. 특히 스와로브스키 백은 레드 카펫의 스타들만을 위해 주문 제작된 것으로, 올 칸에선 미국 여배우 앤디 맥도웰과 전도연 2명에게만 제공됐다.

칸=이후남 기자,서울=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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