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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안된다”… YS 긴급처방/「한국병」의 실체와 치유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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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무원 기강·윤리대책 곧 마련/결단력 보여주며 「차별화」 겨냥
김영삼민자당총재가 지난달 28일 총재취임사에서 제기한 「한국병」의 개념과 치유를 위한 처방전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영삼총재는 이날 연설에서 사회기강해이와 무책임,황금만능주의,권위와 질서의 실종,불신사회,과소비,계층·지역·세대갈등,공해,근로·투자의욕 저하 등 사회병리현상 전반을 뭉뚱그려 한국병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결의의 농축이다.
김 총재측은 한국병이란 용어의 사용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란끝에 연설문에 포함시켰으며 여론의 호응이 비교적 괜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이 즉각 폄하하는 논평을 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한국병」의 실체가 어떤 것이든 일단 상징적 정치구호로서는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민주당대표는 31일 『한국병의 책임은 바로 김영삼씨 자신에게 있다』며 3당합당으로 정치불신이 증폭됐음을 비판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치단체장선거를 연내에 안하는 것도 한국병』이라고 몰아붙였지만 좋은 정치구호를 놓쳤다는 아쉬움 같은 것이 배어있다. 따라서 김 총재는 현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정책나열보다 다수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공감대를 자신의 문제의식과 접목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아직 대통령이 아닌 후보단계에서 국민들이 신뢰할만한 정책을 내놓기도 어렵지만 웬만한 정책을 내놓아봐도 믿지 않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어설프게 몇건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은 없어보인다. 대신 사회에 팽배한 패배감·좌절감을 누군가가 앞장서 극복해야 하며 그 선봉에 자신이 설때 믿고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국민의식 개혁을 위한 제2의 6·29선언이 필요한데 노 대통령의 추진력 부족과 신뢰실추로 잃은 국민들의 기대가능성을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모양」만 강조하다 내실을 놓친 것이 결국 결단력과 진실성 부족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김 총재는 이번 이동통신건에서 보여주었듯이 뭔가 목표를 정하면 고난을 무릅쓰고 관철하는 지도자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 총재는 이동통신에 제동을 건 것이 증시를 순식간에 5백60선까지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김 총재의 한국병 퇴치선언은 영국 대처 전 총리의 「영국병근절」 주장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대처 전 총리는 취임당시 노동당 정권의 산업국유화 정책 및 사회복지제도의 강화,만성적인 파업과 생산의욕감퇴로 위축된 영국경제의 회복을 위해 노동조합과의 정면대결 및 과감한 민영화정책 등을 통해 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한국병치유 선언은 지난 5년간 이행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은 민주화의 부작용과 그로 인한 국가발전의 정체에서 발생한 병리현상을 청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6공정권하에서 만들어진 실패들을 고친다는 점에서 노태우대통령과의 건설적 차별화를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목전의 지향점은 물론 신행주대교붕괴·증시침체·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의 불협화음 등으로 떨어진 여당에 대한 인기도를 만회하자는데 있다.
김 총재측은 지금 한국병의 치유책으로는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뭔가 새로운 구심점이 있어야 국민의 일하려는 의욕과 기업의 투자의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지금이 해답을 내놓을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에게 『김영삼은 해낼 수 있고 일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만 하면 대선에서 틀림없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한국병 치료의 구체적 실마리를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구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참모들간에는 공직자윤리 재확립에서 푸는 것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겠냐고 보는 견해가 많다.
위로는 청와대에서부터 말단관서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부정부패,봉사 정신 결여가 먼저 고쳐지는 기미를 보여야 일반 국민들이 믿고 따를 것이란 논리다.
김 총재가 최근 여러차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고위공무원부터의 솔선수범을 지칭하는 것이며 조만간 구체적인 방안이 발표될 계획이다.
즉,고위직일수록 사정과 이권에 결탁하고 골프장·고급사우나·룸살롱·호화외유를 하는 계층이 바로 그들이란 국민들의 시각에 변화를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향락업소에 대한 중과세조치는 물론 금융실명제 실시,부동산투기대책 등 졸부들을 혼낼 행정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는 현행법과 제도만으로도 충분하며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정부의 각종 민원창구의 비리 내지 부정부패 등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김 총재는 당초의 취임사에는 없던 『공직자들이 마음속에서 우러나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대목을 추가했다.
공무원들의 비리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는 단속도 필요하지만 국영기업체와의 임금격차 축소 등 처우개선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을 김 총재가 앞장서 막아주는 모습을 취하면서 동시에 노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김 총재의 한국병치유 선언은 다분히 안정희구 세력과 보수적 개혁세력을 겨낭한 인상이 짙다.
따라서 보안법·안기부법 개정과 방북인사 석방,전교조 해직교사 복직 등 진보세력이 요구하는 개혁조처에 대해서는 의외로 신중할지도 모른다.
이런 조치는 단계적으로 필요성에 따라 취해지겠지만 김 총재 대선전략의 큰 불은 바로 구체화하기에는 너무 깊고 넓게 퍼진 한국병치료에 맞춰져 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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