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은 칸 영화제 대부분의 상, 경쟁부문 첫 진출한 감독들의 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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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삼 주 이틀’은 영화제 초반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 낙태를 금지시켰던 독재자 차우세스쿠 치하를 배경으로 낙태수술을 받기 위해 가혹한 댓가를 치르는 여대생들의 곤욕을 빼어난 감정묘사와 함께 그려냈다. 감독 문지우는 <2년전 칸영화제 감독주간<(확인요망)에서 호평받은 ‘옥시덴트’에 이어 이번이 겨우 두번째 영화다. 루마니아 영화로는 11년(15년? 헝가리와 헷갈리는 데 확인요망)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이다. 루마니아는 폐막 전날 발표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의 최고상까지 받아 감격을 더했다. 수상작은 코소보를 무대로 역시나 미묘한 정치적 갈등을 배경에 담은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감독 크리스티안 네메스쿠는 지난해 28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올 칸영화제 수상결과에는 루마니아ㆍ러시아 등 동유럽과 한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그리고 터키까지 동쪽에서 온 영화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흔히 황금종려상에 이어 2등상으로 여겨지는 심사위원대상은 일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모가리의 숲’에 돌아갔다. 어린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가 오래 전 아내를 잃은 치매노인을 요양원에서 만나 이를 통해 스스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얘기다. 일본의 전통장례식으로 시작해 영화 전반에 동양적인 색채가 짙다.

위력적인 롱테이크를 통해 영상미를 강조한 러시아 영화‘추방’(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귄체프)에 남우주연상(콘스탄틴 라프로넨코/현장에 남아있지 않아서 감독이 대신 수상)이 돌아간 것은 다소 뜻밖의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불륜을 고백하는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는 남편의 이야기인데, 시사직후 반응이 크게 엇갈렸었다.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는 코언 형제 영화에 나온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심사위원장 스티븐 프리어즈는 결정과정에 대해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하는 식의 농담으로 유들유들하게 넘어갔다. 이미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경력이 있는 터키계 독일감독 파티 아킨(34)은 ‘천국의 가장자리’가 각색상에 그쳤어도 환하게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반면 ‘잠수복과 나비’로 감독상을 받은 줄리앙 슈나벨은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정치적 함의를 담은 영화로는 ‘넉 달 삼 주 이틀’과 ‘천국의 가장자리’외에 애니메이션‘페르세폴리스’가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와세 나오미를 비롯, 고독한 예술영화 감독들에 힘을 실어주려는 심사위원단의 의지 역시 뚜렷이 엿보였다. 심사위원특별상을 공동수상한 멕시코 감독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침묵의 빛’은 종교적인 신심 굳은 주인공이 불륜에 빠져 갈등하는 이야기다. 지극히 정적이고 느릿한 카메라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역시 기자시사 당시 반응이 크게 엇갈린 작품이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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