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1)제88화 형장의 빛(26)참새를 키운 사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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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북 달성군 비슬산에는 무연고사형수 공동묘지가 있다. 무연고사형수 공동묘지는 사형집행 후 인도를 거부하거나 인도해갈 사람이 없는 경우 시체를 매장해 놓는 장소다.
나는 매년 12월26일이면 비슬산을 찾아간다. 스물 여덟의 나이로 교수대에서 이승을 하직한 방영근이 묻혀 있는 무덤을 찾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60년 대말 대구교도소에서 포교활동을 할 때였다. 15명의 사형수를 한자리에 모아 식사대접을 하자 짙은 눈썹에 얼굴 윤곽이 뚜렷한 방이 일어나『머지않아 죽을 흉악범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 드린다』고 차분치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방을 자주 면담하게되었는데 살인강도죄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집행은 계속 유예되고 있었다.
부모가 일찍 죽고 이복형의 구타에 못 이겨 가출한 어린 영근은 철새처럼 떠돌다가 구미공단에 공원으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나 동거를 하게 되었으나 박봉에 생활은 찌들 수밖에 없었다. 사글세 방 값 마련을 위해 동거녀 언니의 결혼패물을 빌렸으나 되돌려달라는 언니 독촉에 매일 시달렸다.
궁리 끝에 그는 주인집 노부부 방에 TV를 훔치러 들어갔다가 들켜 순간적으로 주인집 노인을 밀쳤는데 노인은 그만 뇌진탕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살인강도가 된 그는 자포자기에 빠져 경찰 진술에서도 신문대로 모두 시인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나를 만난 이후부터 구치소 내에서 수의를 벗고 승복으로 갈아입었다. 방의 불법정진은 놀라울 정도였다. 초연치 자기운명을 극복해나갔다. 어느 날 불쑥『스님 한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면서 교도소 내에서 참새 두 마리를 키우고있다고 말했다. 동료 재소자가 청소를 하다가 다친 새끼 참새를 발견하고 혹 방영근이라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가져와 참새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교도관들은 알면서도 그가 너무 착하고 가여워 눈감아주었다.
『저야 사람을 죽인 죄로 징역을삽니다만 참새가 무슨 죄로 징역을 살아야 합니까. 처음엔 작은 생명이라도 건져주고픈 마음으로 길렀으나 참새에 정이 든 지금은 걱정이 앞서요. 사람이 주는 먹이만 먹고 자랐으니 놓아주어도 제대로 살수 있을지….』그는 처음에 참새를 받아 둥우리를 만들어 달걀노른자와 조를 자신의 입으로 버무려 먹여 키웠다. 참새 출현이후 동료 재소자들의 발랄해진 모습을 보고 작은 생명체의 따뜻한 체온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이젠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동안 덤으로 산 건데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스님이 제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다면 참회조차 모르고 죽을 뻔했습니다.』그의 불법신심은 날로 두터워졌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냉혹했다.
70년12월 중순, 서울에서 열린 종중 회의에 참석했다가 내가 주지로 있는 금천 개운사로 내려와 보니 한 통의 속달우편이 와 있었다. 「12월26일 오후8시까지 교도소 내방 바람」.
26일이면 이미 3일이나 지났다. 부랴부랴 대구교도소로 달려갔으나 방은 이미 집행된 후였다. 그의 유품을 건네 받으며 마지막 남긴 그의 글을 읽어보았다. 『밖에는 눈이 오나 보다. 희와 혜(참새이름)는 유난치 재재거린다. 오랜만에 넓은 하늘을 맘껏 날아볼 수 있기 때문일까. 나는 오늘 녀석들을 날려보낼 결심을 굳혔다….파르륵 미지의 세계를 비상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녀석들의 자유를 구속할 어떠한 권한도 이제 나에게는 없다는 걸 알았다.』하루전날 죽음을 예감한 그는 참새들을 날려보내고 조용히 집행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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